세월 앞에 장사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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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아이 같다고 한다.
아이나 노인이나 하나님과 가깝게 지내기는 마찬가지이다.
노인이 되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허상이 다 사라져가고 순수함만이 남은 벌거벗은 자기로 돌아간다.
근원적 본성을 찾아 돌아간다.
마치 낙엽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들처럼 본연의 나가 들어나 보인다.
허상을 벗은 본모습이 들어나 보인다.
그중에서도 노인의 눈은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언어로 변한다.

노자의 도덕경에
<비어 있음을 깊이 통찰하고 고요함을 견지하면 만물의 순환 원리를 볼 수 있다.
모든 사물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저마다 제 근원으로 돌아간다.
근원으로 돌아오는 것을 고요함이라 하고 고요함을 존재의 운명의 순응이라고 한다.
이것이 존재의 실재이다. 실재를 모르면 재앙을 부르고 실재를 알면 모든 것을
품는다.
모든 것을 품는 것은 사(私)가 없는 공(公)이고 공이 곧 가장 높은 왕이고,
가장 높은 왕이 곧 하늘이다.
하늘이 곧 도요, 도가 곧 영원함이니 몸은 죽어도 죽지 않고 영원하다.>

친구가 집에 들러 서너 시간 놀다갔다.
논다고 해 봤자 옛일을 기억해내고 떠드는 게 고작이다.
옛날 패기 왕성해서 육사생도처럼 머리를 스포츠형으로 깎고 번득이던 눈망울은
간곳없다.
카랑카랑하던 목소리는 쇠소리로 변해서 물로 목을 축여가며 떠든다.
생산적인 말도 없고 진지함도 없이 그저 웃자고 하는 말뿐이다.
젊은 아내 친정에 가서 돈 가져오라고 내 쫓으면서 의기양양해 하던 건 다
잊어버리고, 늙은 마누라한테 잘 보이려고 몇 캐롯짜리 다이아반지 사 주겠다고
했더니 필요 없다고 하더란다.
할 수없이 돈 만 달러 쥐어주고 사고 싶은 것 다 사라고 했단다.
헛소린지 자랑인지는 몰라도 허상이 다 사라진 본모습이 들어나 보인다.
친구치고 오래된 친구처럼 구수한 친구는 없다.
정말 노인이 되면 아이로 돌아가는지 아홉 살 때 피난 가던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친구의 아버님은 뵌 일이 없지만 듣고 보니 그 아비에 그 아들이란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라 여겨진다.
한바탕 떠들고 가는 친구의 뒷모습이 구부정한 게 세월 앞에 장사가 없구나.

 

 

1 Comment

  1. 김수남

    2017년 7월 15일 at 12:20 오후

    네,그런 일이 계셨군요.친구 분 모습 뵈면서 정말 그런 생각이 드셨겠습니다.선생님께서 이리 말씀하시고 글을 쓰실 수 있으신 것만 뵈어도 건강하게 잘 지내심의 증거시니 감사합니다.늘 건강하시며 다음에도 친구 분 이야기 많이 들어 드리셔요.가는 세울 잡을 수 없는 것이지만 좋은 친구 분 덕분에 그 분은 여전히 9살 때 피난 가던 시절의 어린 소년의 시절
    추억을 나누며 사심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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