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사령관 부인의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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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입초사에 뜨겁게 올라 내리는 박 사령관 부인의 갑질 논란이
황당하게 들리는 까닭은 지금처럼 까발려진 디지털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못된 사람으로 밝혀진 사모님이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기독교인이라는 게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발 AFP 통신에 의하면 4성 장군 박찬주와 그의 부인은 병사 4명을 집에 두고
빨래, 다리미질, 정원일, 화장실 청소, 쓰레기 줍기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아들에게
제때 대령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팬케이크를 병사의 얼굴에 던지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부부는 개개인의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병사는 교회에 출석하도록
강권을 발휘하기도 했다.

건군 이래 사병을 머슴 다르듯 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군에서 상관이 되면 사병들을 개인 사생활에 끌어다가 부려먹는 관행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수십 년을 이어 오던 암묵적인 제도가 갑자기 불거진 까닭은 촛불 정부가
군인권센터에 접수된 문제의 사실을 부각시키면서 드러난 것이다.
어두운 곳을 밝힌 촛불정부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갑질을 비판하기에는 총리를 위시해서 장관 모두 떳떳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한반도에서 갑질 역사는 아주 먼 옛날부터 행해왔다.
조선 시대에는 세도가 집의 개도 갑질을 해 댔다.
갑질은 고위직의 특권의식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못된 사람은 병장만 달아도 갑질을 해 댄다.
우리나라에 갑질이 만연해 있는 까닭은 우리의 문화가 그렇게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법도 세도가의 갑질을 위해 만들고, 법집행도 세도 앞에서는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우물우물 넘어가고 만다,
국회의원들이 자기들 권익을 위해서 의원 수나 세비명목을 줄이는데 인색한 것도 다
세도가의 갑질에 힘이 빠지는 것이 두려워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번 사건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점도 있다.
옛날에는 소위 고문관이라는 군인이 있어서 상관 집에 끌려가 사병 노릇을 하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대학 나오지 않은 젊은이가 없는 것으로 아는데,
대명천지 밝은 세상에 배울 만큼 배운 젊은이가 노예노릇을 하고도 입 다물고
감수해 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나도 머슴처럼 당했다는 전역병이 봇물을 이룬다니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상응하는 혜택이 있어서 꾹 참고 견뎌내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강원도 양구나 군부대 근처에 가보면 PC방에 외출 나온 군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공관병도 외출이 있을 것이고 휴가도 있을 것이다.
그 흔해빠진 PC방에서 한 마디 글로 써서 올릴 수도 있을 터인데, 그것도 가명으로
얼마든지 하고도 남을 터인데 왜 수모를 당하고만 있었을까?
요즈음 젊은이들은 똑똑해서 할 말 다하고 제가 하고 싶은 일만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명동 성당 공동묘지가 평내에 있었다.
나의 어머니 산소를 그곳에 썼으니 내가 그곳 사정을 잘 알고 있다.
야산치고는 험해서 계곡을 따라 평평한 땅이 좀 있을 뿐 그 나머지는 능선이다.
평평한 땅을 넓게 독차지한 가족묘가 있다. 부모님을 모셔놓고 그 아래로 넓은 터를
잡아 놓았으니 아들과 손주 그리고 증손주까지 누워도 될 만큼 널찍하다.
심지어 연못까지 만들어 놓았다.
아마 30년 전쯤의 일이다.
한번은 그 산소 주인이 병사 네 명을 데려다가 잔디를 깎는 것을 보았다.
그때만 해도 내가 젊은 나이여서 남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울분이 치솟는 것을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던 일이 생각난다.
“군인을 데려다가 개인 묘지 풀을 깎아도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50년이 지난 지금 가보면 널찍하게 자리 잡은 묘지는 그때 그대로이고 풀만 무성하다.
후손이 없는 건지 아니면 후손은 다른 곳에 묻혔는지 빈터에 잡초만 신나게 자란다.
욕심을 부려 넓게 자리를 차지했지만, 세상이 바뀔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되면서 공원묘지도 교통편하고 밋밋한 동산에 잘 조성되어 있는데
누가 구태여 이 골짜기에 묻히기를 원하겠는가?
욕심껏 널찍하게 자리 잡았으나 잡초만 무성한 묘지를 볼 때마다
당신의 욕심이 당신 당대에서도 어긋나고 쓸데없는 허욕으로 변하고 말았는데 하물며
후손에게까지 욕심을 물려주려는 것은 참으로 허황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갑질이라는 게 가해자에게는 통쾌감을, 피해자에게는 고통과 수모를 주는 행위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다 성정과 칠정이 있는데 사령관 부인이라고 본성이 그러했겠는가?
성정(性情:타고난 본성) 즉 인(仁)예(禮)의(義)지(智)가 의기(意幾:자아)로 이어지면
선한 행동이 되고, 칠정(七情: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이 자아에
영향을 미처 칠정과 성정이 잘못 혼합되면 意幾 즉 자아가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병사 부려먹는 것만 배울게 아니라 칠정을 다스리는 것부터 배웠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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