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공수여단 출신 영국 젊은이가 남아메리카 칠리 끝자락에서부터 영국 자신의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무려 19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영국에 있는 집으로 걸어가고
있다.
20대 후반의 청년 칼 부쉬비(Karl Bushby)는 1998년 11월 1일 남극이 가까운 칠리
푼타 아레나스(Pinta Arenas)에서 출발하여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율아시아 그리고
유럽 대륙을 거처 집으로 가고 있다.
지금은 북극에 가까운 베링해협(Bering Strait)을 건너 시베리아를 걷고 있다.
여행을 끝내고 나면 세계 최초로 걸어서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온 사람이 된다.
북부 영국 자신의 집에 닿을 즘이면 나이가 60이 넘을 지도 모른다.
현재 53살이다.
처음 걷기 시작할 때 부쉬비는 간단하게 리어커를 만들어 장비를 싣고 떠났다.
리어커에는 영국군에서 무료로 제공해 준 쌔들라잇 전화기, 쏠라파워로 작동하는
랩탑 컴퓨터 그리고 약간의 보급품이 있다. 주머니에는 몇 백 달러가 전 재산이었다.
후원자는 그의 아버지뿐이다. 아버지는 영국군 특수부대 작전참모 출신으로서 부쉬비의
보급품이나 사진전송, 일기쓰기 등 지원을 맡고 있다.
하루에 32km를 걷는 것을 목표로 삼았는데 시작부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첫날 리어카가 부서져나갔다. 일주일을 걸었더니 발톱이 빠졌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성큼성큼 걷는 방법을 터득했다.
가는 곳 마다 비쩍 마른 키에 직시하는 파란 눈의 소유자인 자신을 매우 매력적으로
보아주었다. 턱밑까지 길어진 노랑머리, 웃기게 생긴 리어카에 잡동사니들을 싣고
밀고 가는 내 모습을 보고 흥미롭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떤 사람은 나를 세워놓고 왜 고속도로변에서 아이스크림 장사를 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나의 대답을 듣고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면부지의 땅을 혼자서 걸어간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좁은 들판 길을 걸어서 대륙을 관통하려면 지정학적 장애도 많다.
험준한 지대와 극한의 기후변화를 격어야 했다.
위험한 고비를 여러 번 넘었는데 그중에 손꼽을 만한 첫 번째 경험은 파나마지역에 있는
정글 ‘다리엔 갭(The Darien Gap)’에서의 일이다.
2001년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를 잊는 정글 ‘다리엔 갭’에 이르렀다.
정글에는 재규어, 비단뱀 같이 무서운 동물들이 어디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지역이다.
그보다도 무장혁명군들과 마주치는 일이 더 무서웠다. 할 수 없이 현지인처럼 머리를
까맣게 염색하고 콜롬비아 노동자로 변신해야만 했다.
그리고 악어가 우글대는 늪지대 물속으로 들어가 머리위에 나뭇가지와 잎을 덮은 다음
4일 동안에 걸쳐 정글 늪지대를 빠져나와야 했다.
무장혁명군을 실은 배가 바로 내 옆을 지나가는 일도 있었다.
운이 좋아 겨우 살아남은 셈이다.
멕시코로 들어서면서 부쉬비는 새 리어카를 장만했다. 그리고 서해안을 따라 미국을
향해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물어본다.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어떤 명확한 목적이 있어서 걷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다만 걸으면서 그것도 27,359km를 걷고 나서 생각이 정리 되었다.
“나는 늘 군인이 되기를 원했다. 원했던 대로 영국군 공수부대에서 수년간 근무했다.
어느 날 자신이 언어 장애자임을 알게 됐다. 언어 장애자는 상병이상 진급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로 인하여 군에서 제대하게 되었고 이혼도 했다.
나의 정서적 감정은 완전히 멈춰져 버렸다. 무능력과 자기 파괴 그리고 죽고 싶을
뿐이었다. 고민 끝에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잡귀들을 황무지에서 푸닥거리 같은
행동을 통하여 떨쳐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년이 걸리더라도 잡귀를
떨쳐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떠나 걷기시작한 동기다.
지금까지 대단히 먼 길을 걸어 왔다. 하지만 중도 포기란 있을 수 없다.
계획대로 걸어갈 뿐이다.“
2002년 미국 국경을 지나고 나니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섭씨 49도가 넘너드는 모하비 사막(Mojave Desert)을 만난 것이다.
사막을 관통하는 고속도로에서 리어카를 끌고 걸어가고 있었다.
고속도로 순찰대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내 리어카를 보더니 고속도로에서 내리라고
했다. 리어카를 끌고 모래 위를 걷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천신만고 끝에 사막을 지나고 났더니 이번에는 리어카를 끌고 록키산맥을 넘어야 했다.
산맥을 넘어 몬타나에서 2003년 새해를 맞이했다.
역경과 역경의 연속 속에 이번에는 엉뚱한 역경에 부닥쳤다.
캐나다 국경 어느 작은 마을 술집 파킹랏에 세워놓은 리어카를 도둑맞고 말았다.
모든 장비며 용품이 다 실려 있었다. 심지어 여권, 사진들, 지도들, 일기장 그리고
텐트까지 다 잃어버렸다. 2003년은 초장부터 망쳤다.
알라스카 하이웨이를 따라 훼어뱅크에 도착했다.
베링해협을 걸어서 건널 계획이라는 말을 듣고 모두 말렸다.
목숨을 잃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는
그리고 베링해협에서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이 들었다. 영국을 떠난 지 벌써 13년이 지났다. 죽기 전에 아들에게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아들도 보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아들 아담(Adam)을
데리고 알라스카로 날아왔다. 그것은 젊은이와 마주한 어색한 만남이었다.
아들을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가 그의 나이 8살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온전한
성인으로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청년이다.
우리는 서로 어떤 말을 주고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극한의 일이 발생한다면 적어도 지금 우리는 만났다는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링해협은 마지막 빙하시대까지만 해도 알라스카와 시베리아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이 무질서하게 떠다니는 그리고 추위와 바람이
인간의 존립을 불허하는 거친 해협이 되어 있다.
시기적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3월을 택했다. 몸 컨디션도 최상으로 끌어 올렸다.
극한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장비들을 준비했으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하여
프랑스 문제해결회사의 스펫셜리스트 Dimitri Kieffer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얼음물 속에서도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특수 잠수옷을 입고 얼음바다에서
헤엄치는 솜씨를 보여주었다.
바닷물 위로 떠다니는 얼음 조각은 집체보다 더 큰 덩어리이다.
얼음덩어리와 얼음덩어리를 연결하여 걸어서 북극을 탐험하는 것은 점점 더 별나고
괴상한 여행이었다. 얼음과 바다를 걷고 헤엄치기를 13일, 드디어 러시아 땅 Ulem에
닿았다.
살았다는 기쁨에 제일 먼저 아바지에게 쌔들라잇 전화를 걸어 “육지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발로 흙을 밟은 다음에 다시 전화해 달란다.
다음날 다시 전화를 걸어 단 두 마디만 외쳤다. “육지다.(Terra Firma)”
긴 여정 중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베링해협을 걸어서 건넜다.
드디어 집을 향해 서쪽으로 걸어가면 된다.
통쾌한 마음은 잠시일 뿐, 러시아 국경수비대에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58일간의 긴 영창생활 끝에 러시아 입국 비자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탐험비자는 90일간의 체류허가 뿐이다. 180일 후에는 출국해서 90일을 보낸 다음
다시 90일 짜리 탐험비자를 받아 입국 해야만 한다.
거기에다가 3,220km나 되는 시베리아 Chukotka 벌판은 오직 겨울철 땅이 얼어 있을 때에만
걸어다닐 수 있는 지역이다. 봄이 되면 동토가 녹으면서 벌판은 늪과 강으로 변해 도저히
걸어갈 수 없는 땅으로 변한다.
꽁꽁 얼어붙고 눈보라치는 시베리아를 걷는다.
90일을 걷다가 멕시코로 출국했다. 임시 거주지로 멕시코를 선택한 까닭은 경험에 의하여
가장 싸고 허름한 숙소에서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90일 후에 다시 시베리아로 건너가 걷기를 계속한다. 벌써 세 번째 반복 되는 일이다.
지금까지 부쉬비는 4개 대륙 25개국을 걸었다.
얼음 바다를 걸어서 건넜고, 6곳 사막을 걸어서 지나왔다.
그리고 7개의 산맥을 걸어서 넘었다. 집을 향해 오늘도 걷는다.
부쉬비는 그동안 책을 출간해서 경비를 충당하고 있다. 그것도 충분치 못해서
도움을 청하고 있다. 뉴스 미디어의 각광을 받으면서 네셔널 지오그라픽에서
다큐먼터리도 찍었다. ‘골리앗 탐험가’라는 별명도 생겼다.
1998년 11월 1일에 탐험을 시작했다. 계획대로라면 14년의 여정으로 58,000 km를
걸어 2012년에 집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사정으로 늦어지면서 2018년에도 끝내지 못하게 생겼다.
2007년 러시아 정부는 부쉬비에게 러시아에 입국할 비자를 내 주었다.
그러나 비자는 90일간 체류할 수 있는 단기탐험비자다. 180일 동안 외국에 나가 있다가
다시 90일짜리 비자를 얻어야 한다.
시베리아 지역은 겨울에 얼음이 얼어 있는 동안에만 갈을 수 있다. 얼음이 녹으면
늪과 강으로 변해서 걸을 수 없는 땅이다. 2007년 한 해 동안 겨우 1,000km 박에
걷지 못했다. 2008년에는 겨우 3주 동안만 걸었다.
2008년에서 2010년은 멕시코에서 보냈다. 비자가 없어서 러시아에 갈 수가 없었고
2008년 금융위기로 스폰서가 떨어져 나가 움직일 수 없었다.
2010년 새 스폰서가 나타나 2011년 다시 비자를 받았으나 겨우 1,100km를 걷는 게
고작이었다.
2012년에는 900km 걷고 쉬어야만 했다.
2013년에는 러시아 정부가 부쉬비는 앞으로 5년 안에 재입국 비자 신청 금지령이
내려졌다.
네셔널 지오그래픽의 도움으로 LA에서 워신턴DC까지 걸어서 러시아 대사관에 갔다.
막강한 여론에 못 이겨 부쉬비가 러시아 대사관에 도착하기 직전에 비자 발급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부쉬비는 다시 러시아의 동토 시베리아를 빠져나오려고 매년 조금씩 걷기를
계속하고 있다.
2015년 5월 15일 야쿠스크에서 걸어가고 있다. 일 년에 겨우 1,000km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