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소매 반바지에 SF Giant 모자를 썼다.
저녁 시간에 거리는 서늘했다.
버스 스케줄이나 알아보려고 나왔다가 날씨가 선선하고
기분이 상쾌해서 나도 모르게 슬슬 걷는다는 게 한참을 걸었다.
나도 안다 저 집이 일산 닭 칼국수 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피해 다녔다.
닭 칼국수라고 배도 안 부르게 조금 주면서 6천 원씩이나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먹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돈이 아까워도 먹기로 했다.
자리에는 곧 많이 손님들이 있다.
나도 자리에 앉아 국수를 시키려 하는데 닭국수냐? 바지락 국수냐? 묻는다.
어! 바지락도 한다고? 그러면 바지락으로 달라고 했다.
그리고 메뉴판을 보았다.
닭 칼국수, 바지락 칼국수, 냉콩국수, 만둣국 네 가지만 전문으로 판다.
전에는 닭 칼국수만 했는데 메뉴가 늘어났다.
네 가지 모두 8천 원씩이다. 나는 깜짝 놀았다.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6천 원에서 8천 원으로 껑충.
뉴스에서 OECD 국가들 보다 한국의 물가 상승률이 3.3배 높다고 하더니,
정말 올라도 너무 많이 올랐다.
그렇다고 일어나 나갈 수도 없고 할 수없이 참고 먹기로 했다.
내가 앉아 있는 동안에도 여러 명 아주머니가 들어와서 자리를 잡는다.
젊은 부부도, 학생처럼 생긴 여자 네 명도 자리를 잡는다.
나만 혼자서 비싸다고 엉기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미국 달러로 치면 $7.50인데, 거기에다가 미국에서는 팁도 줘야 하는데,
미국에 비하면 비싼 게 아니다.
그러면서도 내게 비싸게 느껴지는 건, 나는 한국에서 가난하게 살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가난하게 살면서 행복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하루에 만원으로 살기로 했다.
기껏, 잘 꾸려나가다가 한번 유혹에 빠져 하루 살아갈 돈을 다 날리고 걸어오는데
기분이 상쾌할 리가 없다.
포장마차 떡볶이 할머니가 쳐다보기에 못 본 척 외면하고 걸었다.
지난여름 한창 더울 때 달 반을 문 닫았다가 이제 막 열었다고 했다.
나보다도 나이 많은 할머니가 떡볶이나 어묵을 팔면서 살아보겠다고 땀을 흘리는데
열심히 일하는 할머니 보기에 부끄럽다.
8천 원씩이나 주고 칼국수를 먹다니 할머니가 알면 뭐라고 할까?
“오백 원짜리 오뎅만 먹는 짠돌이 늙은이가 제 돈 주고 비싼 걸 먹었다고?
미쳐도 더럽게 미쳤구나!“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