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여행을 떠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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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 크루즈 여행 스케줄 잡아주다가 그만 우리 부부도 발동이 걸렸다.
우리도 크루즈나 다녀오자고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미국에 오래 살다 보니 웬만한 곳은 다 가보았다.
카리빈 크루즈도 여러 번 다녀왔다. 알래스카 빙하, 북유럽 발틱해, 메디테라닌 등
여러 곳을 다녀왔다.
내 돈 내고 다닌 게 아니면서도 실은 내 돈 내고 다닌 거나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보내주고 대신 연말 정산 때는 비용을 1099으로 보내주니 결국은 내 인컴에
가산되고 만다. 회사는 선상에서 컨벤션을 함으로써 회사 돈 안 들이고 대형 컨벤션을
거저먹는 셈이다. 대신 최상의 호화여행을 즐겼다.
나는 연말 보너스를 크루즈 여행으로 받는 셈인데 안 간다고 돈으로 환산해서 주는 것도
아니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매년 다녀왔다.
그때는 돈으로 받지 못하는 게 아쉬웠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돈은 다 없어져 버렸고,
남은 것은 여행 다녔던 추억뿐이다.

내가 젊었을 때 알고 지내던 닥터 아라타가 은퇴기념으로 파나마 운하 크루즈를
다녀왔다.
어땠느냐고 물어봤더니, 뷰티풀을 연상 을퍼 대면서 한번 가보라고 추천했다.
그런지가 30년도 더 된다. 지금 내가 은퇴하고 크루즈 파나마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처음에는 플로리다에서 크루즈를 타고 파나마 운하를 지나 LA로 오는 상품을 선택했다.
이것저것 따지다가 결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파나마운하를 거쳐 플로리다로 가는 크루즈로
결정지었다.
두 사람이 15일 여행에 6천 달러가 든다. 그것도 겨우 창문 달린 방으로 말이다.
하룻밤 생각해 보고 예약을 하든지 말든지 하기로 시간을 늦춰 놓았다.
아내도 나도 심란하다.
생돈 6천 달러를 은행 통장에서 꺼낸다는 게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뿐인가 경비는 별도로 계산해야 한다.

아내는 다른 여행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국 동부 5박 6일짜리는 불과 천 달러면 된단다. 뉴욕, 워싱턴 DC, 나이아가라 폭포,
토론토 등을 거쳐 오는 거다.
xx 관광에 전화를 걸어 스케줄을 보내 달라고 했다.
한 시간이면 스케줄을 받아볼 수 있으니 세상은 좋은 세상이다.
뉴욕에서 자유의 여신상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그리고 타임 수퀘어를 보고
다음 시로 간다.
뉴욕에서 볼거리만 추려서 본다고 해도 일주일은 잡아야 할 터인데
하루에 다 해치우고 다음 도시로 간다면 이거야말로 겉도 못다 핥고 다닌다는 이야기다.
이게 사람 고단하게 끌고만 다녔지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상품이다.
하다못해 그 짧은 여행 기간 중에 오후 한나절은 아웃렛 쇼핑센터에 내려놓겠다는
스케줄도 있다.
맙소사 이건 한국에서 온 관광객에게나 필요한 여행 상품이다.
나처럼 미국에 오래 산 사람은 여행을 이런 식으로 헐레벌떡 뛰어다닐 수는 없다.
뉴욕 한 도시에만 가도 수십 개 관광 상품이 있다. 며칠 묶으면서 오전 투어
오후 투어로 나눠 다녀도 못 다 볼 것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런던에서 일주일 묶으면서, 바르셀로나에서 일주일 묶으면서
볼거리를 찾아다녔더니 관광 제대로 하는 것 같았다.
다른 걸 찾아보기로 했다.

그날 밤 자면서 생각해 봤다.
앞으로 내가 여행을 다녀봤자 10년도 못 다닐 것이다.
일 년에 일만 달러씩 여행 경비로 쓰고 다녀 봤자 십만 달러도 안 된다.
내가 십만 달러 쓰지 않고 저축해 두었다가 자식에게 노나 준다고 해서 자식들이
고맙게 생각할 리도 없다.
오히려 왜 쓰지 않고 고생만 했느냐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

타고 다니는 차도 바꿀 때가 됐다.
이제 바꾸면 마지막이 될 텐데 고급 차로 바꿀까 생각 안 해본 것도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 오래 살다보니 실용주의가 몸에 배어 있다.
차야 잘 굴러가면 됐지 더는 바라 무엇 하겠는가.
차라리 여행이나 다니면서 쓰고 죽자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 날, 눈 딱 감고 예약해 버렸다.
마음을 고쳐먹으니 오히려 즐겁다.
내가 마음을 고쳐먹고 남은 인생 일 년에 일만 달러는 여행 경비로 쓰기로
했다고 누님에게 말해 주었다.
앞서가고 있는 누님이 한마디 한다.
일 년에 일만 달러도 모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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