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운하를 향해 망망대해를 항해한 지 3일째다.
새벽 6시 15분이 일출이라고 했다. 아침에 커피 한잔 마시면서 내다보면 해 떠오르는 게
보인다. 안 보려고 해도 일출밖에는 보이는 게 없어서 안 볼 수 없다.
태양은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떠오른다.
아침마다 지평선 넘어 떠오르는 태양이 똑같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어제는 붉은 노을을 앞세워 태양이 지평선을 박차고 일어서더니 오늘은 구름 사이로
빨간 얼굴만 “삐꾸브” 내민다. 내일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가슴 설레게 한다.
태양과 지평선은 그대로인데 중간에 끼어있는 구름이 태양을 달리 보이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그 사람 그대로인데 중간에 끼어드는 욕심이 그를 달리 보이게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한낮의 태양은 날렵하고 가볍다. 그러나 밤새도록 숨어 잠자고 일어나는 태양은 몸이 무겁다.
붉고 둥근 덩치를 이끌고 힘겹게 일어선다. 마치 일어나기 싫어 투정 부리는 아들처럼 뒤에서                                                    떠밀려 일어난다. 아침 창을 통해 투정 부리는 태양이 정겹게 보인다.
한번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은 커피 한 잔 마시고 돌아볼 사이 없이 금세 높이 서 있다.
떠오르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달리기 육상 선수를 보는 것 같다.
태양이 하늘에 있을 때는 속력을 못 느끼지만, 지평선에 있을 때는 속도가 선명하게 드러난                                                        다. 짐작해 보건대 지구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돌고 있는지 알 것 같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것처럼 그렇게 빨리 달린다. 인생도 그렇다.

7층에서 선상을 걸었다. 빠른 걸음으로 한 바퀴 돌아오는 데 6분 걸린다.
6바퀴를 돌고 났더니 땀이 난다. 선상 비치 의자에 앉아 이태준의 단편을 읽는다.
끝없는 바다를 바라본다. 허허 망망대해에 까마득히 먼 지평선만이 보인다.
지평선은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뚜렷하게 나눈다. 물과 불이 합칠 수 없듯이 하늘과 바다는                                                        영원히 합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말해 준다.

프린세스 극장에서 파나마 운하 역사를 다규멘터리 영화로 보았다. 그 옛날 힘들었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메인 로비에서 존 존스가 기타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보브 딜린의 ‘blowing in the                                                          wind’, John Denver의 ‘country road’ 흘러간 팝송을 부른다.
추억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감흥을 불러온다.
디너는 Provence Dining Room에서 먹었다. Lam shrank가 나왔는데 양 종다리를 부드러                                                           울 때까지 찐 고기로 맛이 그만이다.
저녁 늦게 Wheel house에서 5인조 밴드가 old pop song 연주하는 걸 듣고 있다.

2,200여 명을 태운 크루즈에는 식당이 여러 개 있다.
14층에는 Horizon Court Buffet이 있다. 가장 인기 있는 뷔페식당이다.
뷔페에는 당연히 오만가지 음식을 다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그러나 뷔페라는 이름과 어울리게 식당치고는 B급에 속한다.
음식도 그렇고 종업원이며 서브하는 매너, 식기 모두 B급이다.
디쉬와 볼, 커피 잔, 쥬스 컵 모두 플라스틱 식기들이다. 실버워도 스테인리스이다.
웨이터며 웨이트리스도 필리핀인으로 젊은 초보자들이다. 손님들도 B급 손님들로 득실거린다.
배가 남산만큼 나온 노동자 타입의 늙은이들이 모여 앉아 배 터지게 계속 먹어치우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뷔페에 다녀오면 배가 불러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가급적이면 뷔페는 피해
다닌다.
아침은 뷔페보다 Bordeaux Dining Room에서 먹는다.
다이닝 룸은 분위기부터 고급스럽게 차려놓았고 테이블마다 테이블보가 덮여있고 식기들도                                                     모두 사기그릇에 커피 잔도 그렇고 쥬스 컵은 유리인 것은 물론이다.
실버워도 비록 도색을 했을망정 은으로 되어 있다.
종업원이 같은 필리핀인이지만 숙련된 나이든 웨이트리스가 서브한다.
간단하게 겨란 후라이에다 베이컨을 즐길 수 있다.
쾌적하고 안락한 분위기 속에서 태평양 지평선을 바라보며 아침을 먹는다.
일출이 자연스럽게 생활 속으로 묻어 든다.
점심과 저녁도 같은 레스토랑에서 서브하지만, 점심으로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하겠기에
뷔페로 가서 샐러드 두 접시로 배를 채운다.

저녁은 Provence Dining Room에서 먹는다.
크루즈 선상에서 가장 고급 레스토랑이다. 그날의 메뉴가 식당 문 앞에 있어서 먼저 읽어보고                                                    먹을 만한지 알아보는 것이 좋다.
반드시 그날의 드레스 코드(복장 규정)를 읽고 거기에 맞춰 차려입어야 한다.
드레스 코드는 매일 배달되는 소식지 맨 윗줄에 그날의 날씨와 드레스 코드가 적혀 있다.
스마트 캐주얼하게 입는 경우도 있고, 라이트 캐주얼도 있지만 짧은 바지와 부르진은 안 된다.                                                   정장(formal)인 날도 있어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정장 입는 날은 정식으로 차려입고                                                           넥타이까지 매야 한다.
미국인들에게 저녁 만찬은 매우 중요해서 평상시 집에서도 옷을 차려입고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 먹는 것을 큰 이벤트로 생각한다. 부인에게는 애정의 표시이기도 하다.                                                    돈이 쏠쏠하게 드는 이벤트여서 자주 벌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고귀한 이벤트를 매일 저녁 즐길 수 있는 것이 크루즈 여행의 장점이기도 하다.

당연히 크루즈 예약할 당시 저녁 만찬도 같이 예약한 손님만 들어갈 수 있다.
저녁 5시 15분짜리와 7시 30분짜리가 있는데 우리는 5시 15분짜리로 미리 예약을 해 놓았기 때문에 별도로 부산을 떨 이유가 없다. 룸 카드에 다이닝 룸 번호가 찍혀 있다.
두 사람만 앉는 걸 원하느냐, 여러 사람과 어울려 앉기를 원하느냐, 네 사람이 같이 앉기를 원하느냐 아니면 승객이 인원을 정할 수도 있고, 장애인일 경우도 있고 아이를 동반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매우 잘한 일이 있다면 만찬을 사전 예약해 놓은 것이다. 자리는 예약해 놓은 대로 늘 같은 자리다. 당연히 담당 웨이트리스의 특별대우를 받기 마련이다.
우리 테이블을 담당한 웨이트리스는 멕시코 시티가 고향인 ‘리리아‘이다.
웨이터나 웨이트리스들도 고급스러운 복장으로 차려입었다. 극진한 대우를 해 준다.
웨이트리스가 극진히 서브하는 까닭은 잘 해주면 가외의 팁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크루즈를 예약할 때 이미 팁을 지불했기 때문에 별도의 팁을 따로 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잘 해줘서 고맙다고 내놓는 사람도 많다. 나 역시 동부 캐나다 크루즈를 여행하면서                                                        마침 카지노에서 딴 돈이 있기에 웨이터에게 팁을 두둑이 준 일도 있다.
디너를 주문하기 전에 웨이트리스에게 음식의 양과 질을 자세히 물어보고 양이 적다 싶으면
다른 메뉴를 더 시켜 놓았다가 먹으면 된다.
다시 말해서 두 사람이 디너 세 접시를 시켜도 무관하다.
실제로 메뉴에 “Tempura Vegetable Sushi” 그리고 밑에 음식 설명을 달았는데                                                                           ”rum-wasabi emulsion, Korean kimchi”라고 적혀 있다.

초밥에 뎀프라에 김치까지 곁들이 푸짐한 접시를 상상했는데 실제로 나온 접시는 실망을 머금케 했다.                                   김밥을 둘러 싸고 있는 것을 뎀프라라고 표현 했고 지그재그의 검은 줄이 간장인 것이다.                                                             김치라고 한 젓갈 놓았지만 이것은 필리핀 사람이 주물러 놓은 배추에 불과하다.
“Pork Rib Chop”을 한 접시 더 시켜 먹은 일이 있다.

Formal 디너를 먹고 Todd Adamson 쇼를 보러 극장으로 향했다.
아역 배우였던 토드는 톰 죤스의 노래도 부르고 팬텀 오페라도 불렀다.
쇼타임 도중에 전역 군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기 바란다고 했다. 줄잡아 2-30명은
일어섰다. 나라를 위해 싸워준 이분들을 위해 박수를 부탁한다고 해서 모두 그들의 은공에
보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박수를 보냈다.
미국은 작은 행사에서도 전역 군인들을 대우해 주는 관례는 보기 좋은 현상이다.
바로 이 점이 미국의 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