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따라 친구 만나러 한없이 달렸다.
달렸다니까 한가하게 경치나 보면서 편안히 차를 타고 간 게 아니다.
전철 한 시간 반이나 타고, 버스로 갈아타고 또 한 시간을 달려서 그다음 작은 버스로
갈아타고 달리니까 ‘보리수 치매 요양원’ 문 앞에 정차했다.
멀기도 했지만, 이리저리 끌려 다니느라고 어디를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미로를 헤매다가 도착한 곳이 치매 환자들이 모여 있는 요양원이다.
오후 한나절을 소비하면서 애써 찾아갔다 왔지만 내가 치매에 걸린 것처럼 가는 길도
오는 길도 기억나는 게 없는 치매 여행이었다.
나를 보리수 요양원까지 데리고 간 친구는 학교 다닐 때 반에서 반장하던 친구다.
늙어 다 죽을 때가 돼서도 여전히 반장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약속한 전철역 1번 출구로 나갔더니 어떤 낮 익은 사람이 웃으면서 다가온다.
모르는 사람이 나를 보고 웃을 리는 없고,
동창을 만나기로 했으니 동창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나도 아는 얼굴임에는 분명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손을 잡고 한참 흔들었다.
“이름이 뭐지?”
“안 x 관”
아–, 너구나! 공부 잘하던 안x관! 그제야 진짜 반가움이 와락 다가온다.
얼굴에서 어릴 때 모습이 그려진다.
반세기 만에 만나는 동창이다.
동창 세 명이 치매 걸린 동창을 만나러 간다.
친구는 휠체어에 앉아 부인의 손에 이끌려 나왔다.
손을 잡고 내 얼굴을 친구 코앞에 드려 대고 “내가 누구니“하고 물었다.
웃고만 있다. “나 재동이야“ 했더니, ”신재동“ 한다.
알아보는 눈빛에 울컥 서러움이 다가온다.
치매에 걸려서 말이 없는 게 아니라, 원래 말이 없던 친구다.
부인이 오랫동안 같이 살았으니 친구에 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부인은 친구가 젊어서도 말이 없어서 얼굴 표정을 보고 속마음을 읽는다고 했다.
그렇다 친구는 말이 거의 없어서 내가 끌고 다니는 대로 끌려 다녔던 친구다.
무전여행도, 캠핑도, 등산도 같이 다녔지만, 친구는 이견을 내는 일이 없었다.
지금에서야 알겠다. 왜 친구는 말이 없는 인생을 살았는지.
친구는 아주 어릴 때 엄마를 잃었다. 아버지도 잃었다던가? 형수님 밑에서 자랐다.
형수님한테 떼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말 잘 듣는 아이라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몸으로 터득했으려니
말없이 순응하며 사는 게 몸에 배어 있다.
말을 대놓고 하지 못하는 만큼, 속으로는 무엇인가 벼르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친구가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이, 자식들 공부를 잘 시킨 것이 다 그런 환경적 요인과
배경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나는 말로만 듣던 치매, 연속극에서나 보았던 치매 환자를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다.
돌아오면서 생각해 본다. 친구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지도 십 년이 다 됐다.
파킨슨 증세까지 나타나 팔다리도 쓰지 못한다.
인생 갈 때까지 갔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남은 건 폐인의 구렁텅이 밖에 없을 것이다.
매정하지만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이야기로 망령든 부모님을 지게에 지고 산속 동굴로 간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는가?
애들 적엔 공부 잘하는 친구가 부럽더니, 이십대엔 금수저가 부러웠다.
어떻게 태어나느냐가 인생을 좌우한다고 믿었던 때도 있었다.
살면서 금수저가 아니라 노력하는 만큼 변한다는 것도 터득했다.
그러면서도 돈 많은 부자가 부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서 곱게 늙다가 곱게 죽는 것 만한 복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꿈도 소망도 시대 따라 철따라 변한다.
엄청나게 부럽던 것들이 다 사라진 것도 희한하지만, 새로운 꿈과 소망이 생기는 것도
희한하다.
욕망과 꿈의 재배치는 어디서 오는 걸까?
재배치하는 능력마저 사라질 까봐 겁난다. 아무 생각 없는 건 인생의 종막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