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된 인생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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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싸다는 이발소가 몰려있는 종로3가로 향한다.
동네 목욕탕 이발소는 이발에 염색까지 하고나면 2만원을 줘야한다.
2만원 주고 깍은 머리는 깎기 전 모양을 고대로 살려 놓는다.
머리는 깎았으되 얼굴모습은 그대로다.
종로 3가 싸구려 이발은 9천원이면 머리 깎고 염색까지 한다.
반값도 안 된다. 싸다는 것처럼 매력적인 건 없다. 싸고 좋으면 더할 나위없겠건만,
세상에 그렇게 좋은 떡은 없다. 그저 싸고 먹을 만하면 되는 거다.
싸구려 이발소에는 사람이 늘 북적인다. 마치 떨이 물건 파는 장사꾼 같기도 하고,
군대 이발소처럼 빨리빨리 해 치우기도 한다.
그렇다고 못 봐줄 정도는 아니다.
싸구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나면 치켜 깎는 바람에 애들 상구머리 같다.
상구머리를 하고 나면 얼굴이 달라져 보인다.
어른 얼굴 같지 않고 애들 얼굴 같아 보인다. 늙은 애들.
멋에 신경 쓰지 않는 나이가 돼서 아무렇게 깎아도 상관없다.
야구 모자 쓰고 다니는 데 아무려면 어떠냐.
나이 들어 좋은 점은 속이 편하다는 거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것이 남들이 나를 쳐다보지도 않으니 신경 쓸 것도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건대 그러면 젊어서는 남이 나를 쳐다볼 만큼 인기가 있었단 말인가?
그래서 돈 비싸게 주고 머리를 깎았단 말인가?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관심을 가지고 날 쳐다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젊었을 때와 늙어서 달리 생각하는 까닭은 기대와 바람이 다르기 때문이리라.
젊어서는 쳐다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밑바닥에 깔려있었고, 은근히 기대했었다.
늙은 지금은 기대해 봤자 헛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포기하고 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머리 깎고 염색하고 나면 젊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한 십년 젊어 보이면 마음도 젊어진다.
머리 염색은 결국 인생을 젊게 염색하는 것이다.
머리 염색 하고 나면 인생이 염색되고, 인생이 염색되면 욕망도 살아난다.
비록, 염색된 욕망일망정 욕망은 꿈도 꾸게 한다.
꿈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들리지만, 늙었다고 꿈이 없으란 법은 없다.
늙은이는 꿈을 가지고 있어도 선뜻 대놓고 말하지 못한다.
잘못 말했다가는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고,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설혹, 아주 친한 친지에게 꿈을 사실대로 말하면, 입가에 미묘한 미소부터 지어 보인다.
긍정의 미소인지, 부정의 웃음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 웃음이 힘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긍정은 아닌 것 같다.
아주 친한 친구는 아예 까놓고 소리 지른다. “야! 꿈 깨.”

친지나 친구의 눈에도 염색된 꿈으로 보여서 그러나보다.
몇 번 당하고 나면 꿈이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
늙으면 꿈이 있으되 드러내놓지 못하는 꿈이어서 슬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나대로 갈 길을 가겠다는 배짱이 생기는 구석이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늙어야만 부릴 수 있는 아집이라 하겠다.

머리를 염색하고 나오면서 생각해 본다.
염색된 인생을 사는 사람은 꿈도 염색 되었다지만, 스스로도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염색된 꿈일망정 꾸고 있는 동안은 행복하다.
행복은 현재를 즐기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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