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아버지날이 없다. 어머니날도 있고 어린이날도 있고 스승의 날도 있지만,
아버지날은 없다.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으로 욕심이 많은 한국 남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새로 아버지날을 만들기는 속이 들여다보이는 것 같으니까
어머니날에다가 곁다리를 끼워 넣어 어버이날이라는 걸로 얼버무려 버렸다.
아버지날이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점잖게 살 일이지 자녀들한테 얻어먹자는 본심이
드러나 보이게 웬 곁다리는 곁다리인지 씁쓸한 느낌마저 든다.
한국에서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미국에는 엄연히 아버지날이 존재한다.
매년 어머니날에 장인 장모님 산소에 다녀오던 것을 올해는 내가 한국에서 늦게 오는
바람에 어머니날 대신 아버지날에 산소에 가기로 했다.
6월인데도 바람이 불고 쌀쌀했다. 늘 겪어봐서 아는 일이지만 어머니날에는 산소마다
방문객들로 넘쳐난다. 그러나 아버지날에는 한산하기 이를 대 없다.
드문드문 산소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강 훑어보면 부인이든가
아니면 아버지 살아생전 사랑받던 딸 같은 사람 몇 명이 눈에 띌 정도다.
올해 우리 가족은 특별나다. 손녀가 새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인사차 오기도 했지만,
두 살 먹은 손녀가 처음으로 절을 시도했다. 달래고 손뼉쳐주어 기분을 들뜨게 해 주었다.
참 세월은 빨라 장모님 돌아가신 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할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그때는 관심 없어 하던 아들 녀석이 지금 와서 자세히 알고 싶어 한다.
아들도 나이 들어가면서 관심사가 바뀌는 모양이다.
점심은 아들네 집에서 먹었다. 일본인 사돈이 싱가포르에서 방문차 와 계신다.
점심으로 ‘찌라시 스시’를 만들었다고 했다.
나는 찌라시라고 해서 증권가에 떠도는 전단지를 가리켜 ‘찌라시 전단지’라든가
‘찌라시 뉴스’ ‘찌라시 TV’ 이런 말만 들어봐서 찌라시라는 뜻이 쓰레기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찌라시 스시‘는 먹고 남은 음식을 섞어 비빔밥처럼 만드는 줄 알았다.
아내도 그렇게 알고 가끔 며느리가 ‘찌라시 스시’를 만들어 오면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 여러 가지 식자재를 혼합하면 되는 간단한 음식 정도로 취급했다.
오늘에서야 알게 됐다. ‘찌라시 스시’라는 게 고급 요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찌라시’라는 말을 명사로는 소식지, 전달사항 등이고, 동사로는 어지르다,
흐트러뜨리다, 식으로 써먹는다.
원래 일본에서 찌라시라는 뜻은 우리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말하는 소식지, 전달사항 등은 영어로 타블로이드, 대중지, 무료신문 같은 의미를
갖는데 일본에서도 그대로 쓴다.
일본에서 찌라시는 동네 식품점 세일 전단지, 중국집 전단지 등을 일컫는다.
우리가 말하는 찌라시는 대중지나 무료 타블로이드처럼 내용을 부풀려서 왜곡되고
자극적으로 기사화 하는 쓰레기 같은 뉴스를 말한다.
일본에서 말하는 찌라시는 전단지로서 사실을 과장되게 선전하는 의미를 지니는
그렇지만 결국 쓰레기인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음식을 오해하고 있었다. 마치 추석 해 먹고 남은 음식을 다음날 다 넣고
비빔밥으로 만들어 먹는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오늘에서야 오해가 풀렸다.
일본에는 발음이 비슷한 ‘치라시 스시’라는 고급 요리가 있다는 사실을.
일본 가정에서 흔히 해 먹는 간단한 요리지만 재료가 만만치 않다.
식초로 간을 맞춘 밥에다가 연어알, 계란, 게맛살, 각종 채소와 새우, 장어구이까지 넣고
비빈 밥에다가 고명을 얹어 놓은 요리다.
‘찌라시’와 ‘치라시’ 발음은 비슷하지만 다른 단어라는 사실을 모르는 데서 오해가
비롯됐다. ‘찌라시’라는 말을 알고 있다는 어설픈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우리의 잡채 같은 고급 요리를 먹다 남은 음식을 모아 섞어놓은 식으로 오해하고 있었던
게 참으로 미안하고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게 먹으면서도 몇 년씩이나 잘못 알고도 깨닫지 못했던 아둔한 속내가 아쉽기만 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