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손주 아이들이 우리 집에 와서 자는 날이 있다.
엄마 아빠가 놀러 가든가 일이 있어서 둘이서만 가야 할 때는 우리 집에 아이를 맡긴다.
애들이 어려서는 할머니하고 같이 자겠다고 해서 한 방에 모여서 잤다.
세 녀석이 한꺼번에 모여서 잘 때는 지지고 볶고 하다가 한 이불을 덮고 잔다.
둘만 있어도 장난치느라고 외로워하지 않는다.
이번 주말엔 딸이 LA에서 열리는 컨벤션에 가느라고 ‘벌저’ 혼자서 3일간 우리 집에서
자야만 한다.
초등학교 일학년 절반을 마쳤다고 글을 읽을 줄 안다.
저녁에 나와 같이 공원을 산책하다가 벤치에 붙어 있는 벤치 기증자의 명패를 보고
무슨 뜻인지는 모르면서 하나하나 읽고 간다.
지 에미가 오늘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스케줄을 적어주었기 때문에
읽어보고 하라는 대로 한다.
하다못해 지 에미가 없는데도 에미가 적어놓은 글은 읽고 하라는 대로 하면서도
직접 보고 말하는 할머니 말은 콧방귀로 듣는다.
저녁때가 되자 집에 가고 싶단다. 벌저는 유별나게 마마보이다.
아이가 시무룩한 게 보기에 딱해서 할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서 개밥도 주고
한 바퀴 돌아보고 왔다.
아이는 집에서 지 엄마 파자마를 들고 오겠단다.
냄새나고 더러운 걸 왜 가지고 오느냐고 할머니가 말렸다.
아이는 엄마 냄새가 좋다면서 극구 품에 안도 왔다.
녀석은 옛날 엄마가 쓰던 방에서 혼자 잔다.
무섭다고 방문을 열어놓고, 불을 켜놓고 누웠다가 잠이 안 온다고 몇 번이고
내가 누워있는 방에 와서 기웃거린다.
결국 방에 가서 책을 꺼내 들고 큰소리로 읽어 댄다.
새벽에 녀석이 제대로 자고 있나 들어가 보았다.
불은 환하게 켜놓고 엄마 바자마를 꼭 끼어 안고 옆으로 누워 쭈그리고 잔다.
큰소리로 책을 읽다 잠이 드나보다 했더니 앨범을 꺼내놓고 엄마와 같이 찍은 사진을
들춰보면서 혼자 스토리를 만들어 내느라고 중얼댔던 것이다.
귀엽기도 하고 치근하기도 하다.
며칠에 불과한데도 저러니 어미 없는 자식은 오죽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려서는 외로움을 표현할 줄 몰라 울기만 하더니 조금 컸다고 이젠 제법 스스로
외로움을 달랠 줄 안다.
아이는 콩나물 자라듯 금세 큰다. 키만 크는 게 아니라 의견도 같이 큰다.
아이가 금방금방 자라는 걸 보면 성장 호르몬이라는 게 무섭기는 무섭다.
나도 성장 호르몬이 펑펑 쏟아져서 아이처럼 정서가 성장해 봤으면 좋겠다.
김 수남
2018년 8월 17일 at 4:05 오전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운 손자녀 두셨네요.눈에 보이는 듯합니다.축하드립니다.선생님은
정서 성장 호르몬이 쑥쑥 여전히 성장하시는 분 같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