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신문을 읽다가 어느 목사님이 쓰신 글 중에서 새겨들을만한 글이 있어서
노트해 놓았다.
사람들의 삶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첫 번째 단계는 그저 생존하는 단계(Survival level)로서 별 의미 없이 그냥 먹고 자고,
일하고 놀고를 반복하는 삶이다.
두 번째 단계는 성공, 출세 단계(Success Level)다. 최선을 다해 성공으로 달린다. 성공과
출세에 이르고 나도 만족하지 못한다.
세 번째 단계는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단계(Significance Level)이다. 가장 높은 단계이다.
나보다도 세 살이나 많은 친구가 아직도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씩씩하고 활기차다. 집에 들어가면 아내에게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으나,
나와 같이 있을 때는 자신은 아직도 20대 청년이라며 자랑한다.
아닌 게 아니라 목소리도 쨍쨍해서 그 나이에도 테너 고음을 유지하고 있다.
집도 큰집에, 좋은 차에, 돈도 많이 벌었건만, 어딘가 가련해 보이는 까닭은 왜일까?
노인이 물질 중심, 일 중심, 나 중심으로 살아가면 가련하고 초라해 보인다.
인생의 마지막 코스를 달리고 있는데도 자신은 아니라고 우기는 것도 문제다.
세 번째 단계에 들어서 있어야 어울리는 나이에 아직도 첫 번째 단계에 머물러
있는 그림은 안 좋아 보인다.
대학에 다닐 때의 일이다. 홍릉에서 자취했는데 옆방에는 음대생 남매가 있었다.
오빠는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학교에 다녀오면 매일 연습한다.
바이올린 소리는 귀가 아프게 들었다.
그 학생 돈과는 무관한 인생을 살았으면 좋으련만, 사회가 그렇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돈이 최우선시 되는 풍토 속에서 그것도 젊은 나이에,
인생의 첫 번째 단계시기에 세 번째 단계 인생을 산다는 게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었겠는가.
행복, 불행을 떠나서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분위기와 겨루기에 외로웠을 것이다.
이것은 다만 경제적 시각으로 보았을 때의 이야기다.
그러나 행복은 돈보다 만족도가 완성되는 것이어서
그 학생도 행복했을 것으로 믿는다.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 바이올린 개인 교습을 받았다.
선생이 미스터 칭이라고 대만에서 이민 온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미스터 칭은 오로지 음악만 하고 아내가 벌어서 살림을 꾸려갔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화목한 가정이다.
아들이 뒤를 이어 바이올린을 전공했고 딸은 피아노를 쳤다.
자식들도 외로운 길을 선택했다. 가난이 그 가정의 의지를 막지는 못한다.
미스터 칭은 지금도 그 옛날 그 집에서 변화 없이 고대로 산다.
세 번째 단계의 인생은 사회적 통념으로 볼 때 힘들고 외로운 길인 것은 사실이지만,
가치 있고 소중한 길이다.
나는 어쩌다가 돈만 찾아 평생을 헤매고 다녔다.
그렇다고 성공이나 출세를 이룬 것도 아니다.
은퇴하고 뒤늦게 세 번째 문턱을 기웃거린다.
두 번째 단계 인생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세 번째 단계로 옮겨 가도 역시
성공은 이루지 못하리라.
그래도 은퇴 후의 인생은 세 번째 단계에 들어서 있어야 그림이 보기에 좋아 보인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름다웠으면 한다. 아름답게 죽었으면 한다.
김 수남
2018년 8월 24일 at 11:43 오후
네,선생님! 선생님은 훌륭하시고 아름다운 인생을 잘 살고 계십니다.이렇게 블로깅을 하시며 삶을 나눠 주시는 것이 참으로 가치있고 아름다운 삶이십니다.행복과 삶의 가치는 주관적입니다.그래서 저는 하나님 믿는 믿음 안에서 매일이 행복하고 감사하고 좋습니다.선생님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매 순간이 가치있고 아름다운 삶 되시길 축복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