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한국에서 독감 예방접종을 받게 됐다.
오전에 일산 병원 지하 1층으로 내려가 번호표를 뽑았다.
내 앞에 30명이 기다린다. 한국은 어딜 가나 사람이 많아 기다리는 건 기본이다.
진행 과정이 너무 느리다. 오후는 1시 반부터란다.
돌아왔다가 오후 1시에 일찌감치 가서 번호표를 다시 뽑았다.
긴 테이블에 다섯 명이 컴퓨터 앞에 나란히 앉아 접수, 간호, 진료, 등록을 받는다.
뒤에 한 여자가 서서 컴퓨터 앞에 앉아 상당하는 직원들을 지도해 주는 것 같다.
다른 여자는 앞에 나와 서서 순번에 맞춰 차례를 지키도록 안내해 주는 여자다.
또 다른 여자는 접수에서 간호로, 간호에서 진료로 옮겨 앉는 걸 가르쳐주고 있다.
뭐 저런 거까지 안내하나 했더니 고령자들의 수준이 고만해서 그런가 보다.
진료 앞에 다다르면 문진표를 작성하란다.
내가 스스로 작성하려 했더니 봉사 요원 여자가 따라오면서 도와 줘야 한단다.
그만두라 하고 고집스럽게 혼자 작성해서 제출했다.
문진표라는 게 열이 있느냐, 약은 무얼 먹고 있느냐 하는 문답형이다.
접수 받은 여자가 훑어보더니 앞에 서 있는 여자에게 문진표를 건네준다.
차례가 되면 이름을 부를 테니 가서 기다리란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이름을 부른다. 이제 됐나보다 하고 달려갔다.
사람이 있나 없나 확인하는 호명이란다. 도루 가서 기다리란다.
한국은 선진국인 줄 알았는데 후진국 캄보디아에서 예방접종 하는 식으로 해 댄다.
드디어 이름을 부른다. 진료라는 사인이 붙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얼굴 한번 쳐다보고 자필 이름 옆에 보는 앞에서 자필로 서명하란다.
예방 접종 한번 하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30분을 기다려서야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예방 접종을 놓아준 간호사가 잔뜩 겁을 준다.
“저녁에 감기 걸린 것처럼 으스스 열이 날거예요. 그러면 타이나 롤을 먹고 그래도 가라앉지 않으면 병원으로 오세요.”
지난 세월 예방 접종을 열반도 더 맞았어도 이렇게 겁나는 소리는 못 들어 봤다.
어쩐지 할머니들이 접종 하고 나오면서 인상을 찌푸리고 엉금엉금 기어 나오듯 나와서
자리에 앉아 쉬면서 큰일 치렀다는 표정을 짓더라.
예방 주사야 어느 나라에서 맞으나 다 그게 그거다.
하지만 일산병원 예방 접종 시스템은 총체적으로 시간과 인력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여러 차례 예방접종을 밭았으나 매번 드라이브스루를 통해서
운전면허증만 보여주고 차에 앉아 있는 채로 한 대 맞고 나왔다. 1분도 안 걸렸다.
지난해에는 일부러 병원에 걸어 들어가 줄을 서 보았다.
접수하는 여자 한 명이 있고 같이 앉아 있는 간호사가 접종을 놔준다.
문진표도 체크형이어서 간단하게 체크하면 된다. 기다리지 않는다.
병원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나가라는 쪼다.
예방접종 맞으러 갔나하면 곧바로 돌아 나오는 게 예방 접종 시스템이다.
오늘 일산 병원에서 예방 접종을 하면서
예방 접종이 뭐 대단한 주사라고 야단법석을 떠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한국은 전산 시스템이 잘 돼 있다면서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매사에 진료비며 물건 가격이 비싼 이유로 시간과 인력 낭비가 원인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동안 눈부시게 발전했고 많이 선진화 된 것은 사실이다.
아직 미진한 부분이 눈에 띄지만 이것도 금세 개선되리라.
한민족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