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사는 친구로부터 대추 한 보따리를 택배로 받았다.
시장에서 파는 둥글고 굵은 대추알이 아니고 옛날 대추처럼 길쭉한 대추다.
한 대접 덜어 씻어놓고 그 자리에서 다 먹어치웠다.
옛날 대추보다 알이 조금 크기는 해도 맛은 옛날 맛을 지니고 있다.
대추 살이 빡빡하고 대추 향이 고대로 살아있다.
어떻게 벌래 먹은 것 하나 없이 고르게 통통한지 모르겠다.
푸른색 도는 대추도 하나 없이 모두 골고루 빨갛다.
요새는 농사기법도 발달해서 열매도 커졌고 잘 익어 골고루 빨갛게 만든다.
열매가 이만큼 때깔 좋고 말끔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험과 실패와 시련을 겪었겠는가?
모르긴 해도 농작물도 달달 볶였을 것이다. 마치 대학 입시를 앞둔 고3 학생처럼.
지금 세상 돈이 뭐기에 농작물이나 사람이나 자연스럽게 살지 못하고 달달 볶이면서
상품 가치를 올려야 하나? 대추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사람이 상품인가?
달달 볶이면서 살아야 하는 세상이 원망스럽다.
이 대추를 말리면 한약방에서 약재로 쓰는 마른 대추가 되리라.
여하튼 대추는 건강에 좋은 먹거리로 알고 있고 기분 좋게 먹는다.
작년에도 대추 한 박스를 보내줘서 혼자 다 먹지 못하고 조카를 불러 나눠 준 일이 있다.
친구는 대추 농사를 벌이로 지을 것인데
내게 맛보라고 그냥 보내줘서 받아먹기만 해도 되는 건지 고맙기만 하다.
대추를 누런 부대 종이로 얼기설기 엉성하게 포장했다.
포장지를 투명 테이프로 꼼꼼히 둘둘 말아 보낸 솜씨에서
사랑이 덕지덕지 붙은 손길이 느껴진다.
옛날 친구네 농촌마을 도도리의 향기가 묻어있다.
대추 향이 마치 우리 어려서 놀던 초가집 같은 냄새가 난다.
대추 맛은 추억을 끌어올리는 낚시 바늘 같아서 깊숙이 잠겨 있던 기억을 낚아 올린다.
중학교 때는 친구내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자고 왔다.
그때가 추석이었다. 대추나무는 없었지만 바람 잘 통하는 대소쿠리에 먹다 남은
송편이 있었다. 꾸덕꾸덕한 송편을 꺼내 먹느라고 들락거리던 시절.
그때는 친구어머니도 살아계셨다.
아들 친구를 잘 대접해야 한다면서 정성을 다 하시던 모습이 그립다.
기차 타고 돌아갈 때는 친구가 이 십리 길을 걸어서 송정리역까지
배웅해 주던 그런 시절이었다.
집은 그 자리 그대로인데 사람은 다 바뀌었다.
어릴 때 추억을 기억하는 사람은 달랑 친구 한 사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