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를 걸어 인사동으로 향한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밤은 걷기엔 그만이다.
주중이어서 복작대지도 부딪치지도 않는다.
이 길을 늘 걷다 보니 조기 가면 먹을 게 뭐가 있고, 무슨 장사가 장사질을
어떻게 하는지 다 안다.
막내딸한테서 e-mail이 왔다.
공양미 담는 어른 손바닥만 한 색동 자루를 아마존에서 판다면서 사진까지 보내왔다.
같은 것을 골라보란다.
인사동에서 찾아봤는데 내 눈에는 조그마한 색동 복주머니만 보인다.
하나에 3000원씩이란다. 사진을 찍어 보냈다.
곧바로 그건 너무 비싸단다. 막내딸은 나를 닮아 싼 것만 좋아한다.
하나에 1달러짜리를 찾으란다.
복주머니가 더 좋다면서 아기 손바닥만 한 작은 거로 100개나 필요하단다.
손녀딸 돌잔치에 손님들에게 초콜릿을 담아서 답례품을 준비하는 중이다.
벼르다가 일요일을 기해 복주머니 찾으러 광장시장엘 갔다.
오목조목, 아기자기한 주머니들이 여러 종류다.
일단 사진을 찍고 가격을 알아서 보냈다.
보내면 딱지맞고, 보내면 딱지맞고를 여러 번 했다.
가게마다 파는 복주머니가 다 다르다. 여러 공방에서 만들기 때문이리라.
어젯밤 인사동 입구에서 5개들이 복주머니를 사진 찍어 보냈다.
보내면서 못을 박았다. 깎을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그랬는데도 까다롭게 군다. 오렌지색은 빼고, 또 무슨 색이 있는지 사진 찍어 보내란다.
아무리 내 딸이지만 꼬치꼬치 따지는 꼴이 보통 피곤한 게 아니다.
며칠 뒤, 저녁에 상점에 들러 사겠다고 했더니 뭉치로 들고나온다.
색깔이 여러 종류 있기는 한데 샘플처럼 새빨간 색과 진녹색은 없다.
이러면 안 되지.
중국 사람들에게 빨간색과 녹색은 행운과 부를 가져다준다는 색깔인데,
빨간색과 녹색이라면 미치도록 좋아하는데, 이 색이 빠지면 다른 색은 있으나 마나다.
내일 다시 올 테니 구해 달라고 했다.
100개에 10만 원인 가격을 깎아서 9만 원에 샀다.
딸은 깎아서 샀다고 나보다 더 좋아하면서 몇 시에 도착 하느냔다.
딸은 작은 복주머니에다가 비자카드보다 작은 밀크 카라멜을 넣어 돌잔치에 참석한
손님들에게 답례품으로 선물할 것이라고 했다.
손님들은 아기 선물을 가지고 올 것이다.
어떤 친구는 선물 카드를 놓고 갈 것이고, 백화점에 들러 장난감을 찾아가라는 영수증도
주고 갈 것이다. 돈도 주고 가는 손님도 있을 것이다.
손님들에게 답례로 주는 선물이 너무 초라한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차라리 안 주는 게 낫지 어떻게 이리 작은 걸 선물이라고 줄 수
있느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식은 900원 짜리 복주머니에 500원 짜리 카라멜이 들어있는 선물이지만
훌륭한 선물이 될 것이다.
허례허식을 좋아하지 않는 미국 친구들은 삐가뻔쩍한 선물보다 부담 없는 선물을 선호한다.
막내딸에게 어떻게 9만원을 달라고 하겠는가.
다른 것도 아닌 손녀 돌잔치에 쓰겠다는 걸.
한편 꺼림칙하기는 하다만 생각해 보면 그런 것만도 아니다.
막내딸이 제일 잘 사니까 받아내야 한다.
받아서 못사는 큰딸을 보태줘야 한다. 아무도 모르게 비밀리에.
막내딸이 비밀을 알고 나면 기분 나빠 펄쩍 뛸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부모 마음, 자식 마음이 다른 것을.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
막내딸에게서 돈을 받아낸다는 것은 여드레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