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왠지 감이 따고 싶다.
아내가 감 따는 걸 보고만 있었지 내가 직접 따지는 않았다.
손주와 아내는 신이 나서 주고받으면서 감을 딴다.
아마 즐기면서 감 따는 지도 한 달은 되나 보다.
잎이 녹색일 때부터 따기 시작한 감을 잎이 갈색으로 물들었는데도 계속 따고 있다.
한 달이 넘도록 뒷마당에서 감을 딴다.
감 따는 게 하나의 놀이이고 즐거움이다.
농부가 수확하는 것처럼 감을 한 박스 따서 들고 들어오면서 마음 뿌듯해 한다.
감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도토리 같은 모양새로 카시야스(Hachiyas, 홍시)가 있고,
휴뉴스(Fuyus 땡감)는 둥글넓적한 모양새로 딱딱할 때 먹는다.
홍시가 달린 감나무는 잎을 다 떨기고 나무에 감만 달린 풍경이 보기 좋다.
땡감이 달리는 감나무는 감이 다 익었는데도 감과 같은 색깔로 물들어가는 잎이
그대로 무성하다.
우리 집 감은 땡감이다.
우리 집 감나무는 효자 나무다.
일 년 내내 물 한방을 주지 않는데, 거름도 주지 않고 본척만척 쳐다보지도 않는데
감나무는 진국처럼 묵묵히 주인에게 보답한다.
매년 주먹만 한 감을 500개도 더 선물한다.
너무 많아서 노나 줘야 한다. 올해에도 이집 저집 나눠주었다.
LA에서 사는 처제는 그 먼 LA에서 감 가지러 샌프란시스코까지 왔다.
돈으로 치자면야 시장에서 사다 먹는 게 낫지, 서울서 부산 두 곱이나 되는 거리를
달려가서 감 한 박스 얻어오겠느냐만, 사람 사는 정이라는 게 돈으로 계산할 수는 없는 거다.
박스로 담아 들고 갔다.
감이 익어가면서 감잎이 무수히 떨어진다.
며칠 만에 감잎은 나무 밑에 수북이 싸인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
어제 월남인 가드너가 와서 잔디에 싸여있던 감잎을 깨끗이 치웠기에 이참에 잔디밭에
물이나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마당에 나가 잔디에 물 주다가 감이 따고 싶어졌다.
아내가 거의 다 땄고 높은 곳에만 남아 있다.
감 따는 긴 장대를 들고 하나둘 따기 시작했다.
감잎사귀가 감과 같은 붉은 색이어서 감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아내기가 어렵다.
감을 따면서 깨달음까지야 되겠느냐만,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붉게 물들어가는 감잎이 너무 곱다는 사실과
왜 이 많은 감잎이 붉게 물들어갈까? 하는 사연이다.
붉은 감잎이 감 열매 색깔과 같은 보호색이어서 실제로 감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여름에 감이 파랄 때는 잎이 파래서 감을 보호하더니
가을에 감이 익어가면서 황색을 거쳐 붉게 변하니까 잎도 같은 색으로 변해 간다.
잎은 나무에서 떨어질 때까지, 끝까지 감을 보호하려는 감잎의 충심을 알게 되었다.
마치 일벌이 여왕벌을 감싸 주듯이.
자연의 섭리는 참으로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