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기 주교, 암으로 교구장 은퇴했지만 평신도 신앙수련 직접 지도
조선일보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2018.12.14.자
“성탄이 보름 남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날이지요. 그러면 구세주는 뭘까요?
엄마를 찾는 아기에 비유해 볼까요? 아기들은 맛있는 것, 장남감을 줘도 울음을 그치지
않다가 엄마가 나타나면 뚝 그치지요. 이렇게 나타남으로써 상황과 운명이 180도 바뀌어
기쁨과 환호, 감사와 평화가 넘치게 하는 분이 바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난 10일 오전 경기 용인 처인구 고조골 피정의 집, 1891년 지어진 한옥에 모여든
50여 명의 신자는 귀를 쫑긋 세웠다.
매월 둘째 월요일 열리는 ‘최덕기 주교와 함께하는 피정’ 시간, 피정은 천주교 신자들이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묵상과 기도를 하는 신앙 수련이다.
보통 담당 사제가 지도를 맏는데, 교구장을 지낸 주교가 평신도의 피정을 지도하는 것은
거의 유례가 없다. 제의실도 따로 없어 최 주교는 방 뒤쪽 구석에서 옷을 갈아입었지만
방 안은 가족적인 분위기가 넘쳤다. 한복 차림에 쪽찐 머리를 한 성모상이 놓인 작은 한옥
방에 옹기종기 모여 미사 드리는 모습은 초기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떠올리게 했다.
최덕기(71) 주교는 천주교 수원교구장이던 2009년 암(임프종)이 발병해 교구장직을 조기
은퇴했다. 은퇴 후 그가 찾아간 곳은 경기 여주의 산북공소, 공소(公所)란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소규모 신앙 공동체다. 당시 153명의 신자가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공동체를 다시 일궜다.
신앙생활을 쉬고 있던 ‘냉담자’들을 찾아다니며 다시 성당에 나오도록 했다.
그는 2016년 신북공소를 신자 500여 명의 본당(성당)으로 승격시키고 고초골로 이사했다.
고초골은 19세기 전반 박해 시대에 신자들이 숨어 살던 곳, 남쪽으로 산을 넘으면
김대건 신부가 묻힌 안성 미리내 성지다. 최 주교가 산북을 떠나 이곳으로 올 때만 해도
피정 지도를 직접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피정의 집 바로 옆에 집을 짓고 살게 되면서 ‘사제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처음 투병할 땐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름다운 산천이 다 회색으로 보인 적도
있습니다. 건강을 회복하고 나니 사제는 죽을 때까지 사제로서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지요.
그래서 사제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힘닿는 데까지 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6월 첫 피정 때에는 20여 명이 참석했는데, 최 주교가 쉬운 말로 강의하고
미사를 집전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참여자가 늘고 있다.
영하 7도였던 이날도 참석자가 몰려 의자를 급히 추가로 놓았다.
최 주교의 준비는 철저했다. A4 용지 10여 장 분량의 원고에 매월 주제도 바꾼다.
휴가철인 8월엔 ‘휴가’ 위령 성월인 11월엔 성인들과 순교자들에 대해 강의했다.
예수 탄생을 맞는 대림 기간인 지난 10일 주제는 예수 탄생의 의미였다.
강의 중간 중간에 묵상할 거리도 던진다.
“예수님이 잔치에 초대했을 때 똑똑한 사람들은 핑계를 대면서 오지 않아요.
그러나 철부지들은 옵니다. 똑똑하다는 건 뭘까요? 하느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하느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고 의탁하는 사람들이지요.
반면 철부지들은 순종합니다. 주님 앞에서 나의 모습은 어느 쪽일까요.
똑똑한 사람? 철부지?“
오전 9시 30분에 시작된 피정은 최 주교의 강의, 미사, 점심, 산책, 기도의 순서로
오후 2시 30분까지 이어졌다. 참가비는 점심 식사비 6000원.
참가자들은 기쁨 가득한 표정으로 피정의 집을 나섰다.
최덕기 주교가 100년 전 신자들이 지은 한옥 피정의 집에서 강의하고 있다. 최 주교가 지도하는
피정은 할아버지가 옛날이야기 해주듯 쉬운 비유로 신앙인의 자세를 설명해 인기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