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대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가우디는 이미 진로를 정한 상태였다.
가우디는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학업에 있어서 가우디는 상당히 까다로웠다.
바르셀로나의 건축 학교에 입학하기는 했으나 수업에는 결석이 많았다. 교수들이 가르치는
것에 흥미를 못 느끼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고는 했다.
그래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강의에는 참석했다. 어쨌든 학비는 내야 했기에 가우디는
건축가들 밑에서 도면을 그리는 일을 했다.
수업에 빠지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발전해 나갔다. 졸업을 한 1878년에는 제법 인기 있는
젊은이였고 첫 건축 일도 따냈다.
젊은 시절 가우디는 상당한 멋쟁이였다. 장인(가죽기술자)이 제작한 장갑을 꼈고
아루누스에서 만든 모자를 썼다. 신발도 형이 직접 길을 들인 걸 신었다.
장래가 유망한 건축가는 형인 프란세스크와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형 프란세스크는
25세에 죽고 만다. 그리고 두 달 후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가우디는 멋쟁이에서 고약한 은둔자로 변해갔다.
그들의 죽음은 가우디를 평범한 삶에서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때 가우디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여인이 나타났다.
붉은 머리의 우아한 여인 조세파 모레우가 어쩌면 당시 이혼녀였는지도 모른다.
소심한 가우디는 용기를 내 청혼했다. 가우디는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이었다.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는데 여자가 반지를 보여주면서 임자가 있다고 한 것이다.
가우디는 종교에 의지해 마음을 달랬고 그 일로인해 여자에 대한 관심은 영원히 사라졌다.
하지만 종교에 귀의하면서 내적인 삶은 충분히 풍요로웠다.
레이알 광장의 장식 램프는 그가 공식적으로 맡은 첫 작업이었다. 원래 그 일을 맡았던
디자이너가 사망하는 바람에 대신 하게 된 일이었다. 보수에 대한 분쟁 때문에 일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그 성공은 묻히고 말았다.
이 무렵, 가우디의 경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운명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가우디 일생일대를 결정지어준,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났던 것이다.
기업가이며 갑부였던 에우세비 구엘이 그 인물이다. 구엘은 가우디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자금을 대 준다. 이거야말로 모든 건축가의 꿈이지만 가우디에게 꿈은 현실로
다가왔다.
가우디의 고객 에우세비 구엘은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부였다.
가우디의 남다른 천재성을 꿰뚫어본 구엘 역시 만만치 안은 인물이었다. 그는 굉장히 관대한 사람이었다. 이 두 사람의 첫 대형 프로젝트는 당시 바르셀로나 끝에 있던 구엘의 파빌리온(별장) 정문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일이었다.
가우디는 일을 맡자마자 거부들의 파빌리온은 어때야 하는지 연구했다.
먼저, 부유한 가문에 어울리는 기품 있는 입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가우디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웅대한 문지기 숙소를 탄생시켰다.
모두 무어 양식으로 지었다.
구엘은 그 결과를 보고 파빌리온의 마구간과 문지기 숙소 재건도 맡겼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두 사람은 평생 같이 작업할 정도로 신뢰했다.
철문에 디자인해 놓은 용 ‘라돈’
구엘의 파빌리온을 지키는 신화 속 존재 거대한 용 ‘라돈’을 구현해 놓았다.
헤스페리데스의 동산을 지키는 용 ‘라돈’에 처녀들과 황금 사과도 잊지 않고 만들어 놓았다.
신화에서 이 용은 헤라클레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이는 가우디의 화려한 건축물들의 맛보기에 불과 했다.
두 사람의 위대한 공동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고객과 건축가가 아니었다.
가우디와 구엘의 아주 친밀한 친구 관계였던 것이다.
1969년 Pavellons Güell은 국립 역사 및 예술적 관심의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현재 Royal Gaudí Chair의 본부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