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에 검은 러닝셔츠를 입고 둥근 밀짚모자에 선글라스를 꼈다.
금년 봄 들어 처음으로 따뜻한 날이다.
하늘에 구름도 한 점 없어 온전한 태양이 마음껏 빛을 발한다.
바람이 불어오지만 훈훈한 봄기운을 담고 다가오는 게 싫지 않다.
바람은 봄기운을 몰고 와 여기저기 뿌려놓고 지나간다.
마치 초가집 굴뚝에서 나온 연기가 보리밭두렁을 기어가듯이…
벌쳐 한 마리 하늘 높이 떠서 먹잇감을 찾는다.
봄나들이 나온 들쥐 새끼라도 걸려들까 눈여겨본다.
아무리 세상이 넓다 해도 먹잇감 찾는 벌쳐 눈을 속일 수는 없다.
들쥐 한 마리 쏜살같이 구멍으로 피신한다.
들쥐도 안다. 봄이라고 해서 함부로 나다녔다가는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새벽안개 계곡을 따라 가라앉듯 봄도 가지런히 들녘에 내려앉는다.
들녘만 아니라 우리 집 뒷마당에도 당도했다.
따뜻한 봄기운이 무럭무럭 피어난다.
아내가 사다 놓은 오이 모종을 심었다.
검정 플라스틱 화분 하나에 다섯 포기씩 들어 있는 오이 싹을 뭉텅이로 세 곳에 나눠심었다.
가지도 네 구루, 방울토마토도 네 싹 사다 심었다.
방울토마토는 손주가 좋아해서 심은 거다.
상추씨도 뿌렸다. 걸음으로 닭똥이 좋다고 해서 한 포대 헐어서 흙에 섞었다.
냄새가 고약한지라 파리가 꼬여들까 봐 걱정했다.
왼 걸 파리는 없는데 간밤에 여우인지 라쿤인지가 들 쑤셔 놓았다.
상추씨 뿌려놓은 흙을 다 뒤집어 놓았으니 싹이 나기나 할는지…
새 생명들은 어두운 밤에 몰래 흙을 뚫고 나와 날이 밝으면 보란 듯이 웃는다.
소리 없이 자란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경이로운 생명력이 놀라워 새싹에게 살짝 물어보았다.
―어디서 생명의 비밀을 배웠니?
―씨 속에 웅크리고 기다려야 해. 어떤 때는 해를 건너뛸 때도 있거든.
참고 견디면 때가 와.
―봄이 왔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 말이야?
―몸이 근질근질하거든 그러면 봄이 왔다는 증세야. 오히려 이래라저래라
공부시켜 놓으면 봄인지 가을 인지 헷갈리고 나약해 진단 말이야.
새싹인 주제에 어른처럼 말한다. 아예 까놓고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다.
―사람들은 말이야 자기 자식들은 닭장 같은 방에 가둬놓고 열심히 공부나 하라면서
좋아하기는 왜 올가닉만 좋아하지?
―그건, 자식들은 내 말을 들어야 좋고, 올가닉은 내 몸에 좋아서 그래.
―그러면 그게 다 자기를 위한 욕심이네?
―그렇다니까, 사람들은 원래 그래 아는 게 그거뿐이니까.
―새싹아 너는 좋겠다 아는 게 많아서…
―누구든지 그냥 놔두면 다 아는 거야.
“그냥 놔두면 다 아는 거야~~~”, “그냥 놔두면 다 아는 거야~~~”, 하는 새싹의 소리가
온종일 메아리쳐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