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는 9월 쯤 붉었다가 터져서 씨를 다 떨구고 난 다음 흰색으로 변한다.
갈대는 가을이 저물어 갈 때 바람에 날리는 흰색이어야 아름답다.
여름철 한창때의 푸른 갈대는 바람이 불어도 꼿꼿하게 서 있으려고 발버둥 쳤다.
바람과 싸우면서 분을 이기지 못해 부르르 떨기도 했다.
늙은 갈대는 바람과 맞서지 않는다.
바람이 원하는 대로 기울었다가, 바람이 가고나면 다시 일어선다.
젊어서는 앞날만 생각하고 미래만 이야기 했다. 내일은 어떻게 되겠지…
세상을 바꿔보려고 했다. 아내의 성격을 바꿔보려고 했다. 무엇이든 노력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몸도 마음도 지칠 때쯤 되고서야 깨달았다. 세상은 예상치 못한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아무것도 바꾸거나 고칠 수 없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지혜를 깨닫기까지 젊음을 다 허비하고 말았다.
만남과 헤어짐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 당하는 경우가 많다.
첫 번째 만남이 어머니와의 만남이었던 것처럼…….
감히 누가 손자를 만날 것이라고 상상이나 해 보았겠는가?
손자는 엄마의 말을 신뢰한다. 하나님 말씀보다 더 신뢰한다.
어미는 내 말을 믿고 살아간다. 아비의 말에는 계산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흔이 다 돼가는 딸이지만 나는 딸에게 꿈을 그리면서 산다.
딸은 손자의 꿈을 품고 산다.
내리사랑이라더니 꿈도 내리 꿈이다.
노인이 되고 보니 과거만 생각하고 과거만 이야기 한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지난날 나를 도와주었던 사람들의 기억만 남아 있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았고, 도움을 주기보다는 도움을 받은 일이 더 많았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지난날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안개 같은 세월을 더듬으면서 살았다.
노인이 되면 다 알 것 같으나, 오래 살았으니 많이 알 것 같으나 경험해 본 것만 안다.
주목받는 인생은 아니었다. 눈길조차 받지 못했다.
굿 가이가 되겠다고 하지도 않았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늙으면 매사에 흥미를 잃고 시시해 진다.
열에서 스물로 넘어갈 때처럼 그렇게도 선호하던 예쁜 여자도 시큰둥하게 보인다.
부잣집 아들이 부럽고, 돈 잘 버는 친구는 행복한 줄 알았다.
노인이 되고 보니 다 부질 없는 것들이다. 건강한 노인이 제일 부럽다.
육신이 멀쩡하다는 것은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젊어서는 옷도 쉽게 헐고 신발도 빨리 닳아 없어지더니 늙으니까 옷도 해질 일 없고
신발이 닳아나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닳았는지 헐었는지 슬며시 사라지고 만다.
떠나는 사람마다 고독을 떠넘기고 간다.
하나가 떠났으니 하나를 사귀어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안 된다.
나보다 늙은 누님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나 사귀자다. 찬밥 더운밥 가릴 게 없단다.
친구 사귀는 것도 진화한다. 나이, 학벌, 재력 따지지 않는다.
그저 같이 걸을 수만 있으면 사귀는 거다. 음식 나눠먹고, 연속극 같이 보고, 병원에 갈 때
같이 가 줄 수 있는 사람이면 “띵호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