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재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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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되면 젊어서는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노안으로 점점 시력은 상실되어가지만 대신 혜안이 싹트기 시작한다.
살면서 축적된 경험으로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사람을 만나도 인물보다 마음이 보인다.
자연스럽게 욕심을 내려놓고 인생을 되씹어보게 된다.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에서 사투 끝에 거대한 물고기를 잡았지만 결국은 뼈대만
남은 것처럼 인생의 허무를 겪어보는 것도 노인이 되고 나서 이해가 되는 단면이다.

노인의 재혼이 어려운 까닭은 바로 이런 문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2년 전에 상처한 친구에게 남자가 혼자서 어떻게 살 것이냐 100세 시대라는데
재혼하라고 권유한 적이 있다.
“야, 난 싫어 재산 노리는 여자들이 오겠다고 줄을 섰는데 그따위 바보짓은 안 하겠다.”
“왜 그런 여자만 생각하니? 그러지 말고 진실한 여자를 찾아보면 될 것 아니냐.”
“세상에 진실한 여자가 어디 있니? 다 까뒤집어 놓고 보면 결국은 돈이지.”
불신인지 의심인지 그런 마음이 들게 만든 세상을 원망하는 수박에 없다.
돈이 좀 있는 할아버지는 재산 날릴까봐 재혼을 꺼린다.

재산이 없는 할아버지는 잃을 것은 없지만 외로움이나 달래면서 노후를 맡겨보자는
마음에서 재혼을 원한다.
할머니라고 생각이 없겠는가? 자원해서 봉사하겠다는 할머니는 찾기 어렵다.

오래 전에 매형이 피부암으로 일찍 죽는 바람에 누님이 홀로 살았다.
아직도 젊은 나이에 어떻게 혼자 살겠느냐며 재혼을 권유한 일이 있다.
누님은 “야, 난 재혼 같은 거 안 할래, 늘그막에 송장 치루고 싶지 않아.”
하기야 여자는 경제적 문제만 해결된다면 구태여 재혼하겠다고 하지 않는다.
배우자가 병이라도 생기면 죽을 때까지 돌봐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 때문이다.
그러나 할머니도 돈이 없으면 외로움이 곱절로 다가온다.
말이 좋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지 사실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혼을
꿈꾸는 할머니를 흔히 볼 수 있다.

남편이 죽으면서 물려받은 재산이 꽤 많은 미국 할머니를 알고 지냈는데
어느 날 재혼 했다는 말에 놀랐다. 어디서 배우지를 만났느냐고 물어보았다.
시니어 센터에서 만났다면서 새로 만난 남편은 나보다 더 재산이 많다고 한다.
그녀는 짐을 싸들고 재혼한 남편의 집에 들어가서 산다.
한번은 그의 집을 방문했는데 차고에 골동품 이탈리아제 1950년도 페라리를 위시해서
두 대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던 일이 생각난다.

내가 아는 미국인 할아버지 토니는 버클리 아파트에서 가난하게 혼자 산다.
애인으로 할머니가 있는데 매일 놀러 와서 점심을 만들어 같이 먹는다.
토니만 있을 때 슬쩍 물어보았다. 할머니와 맨 날 만나면서 왜 같이 살지 않느냐?
토니는 웃으면서 애인이 나와 결혼하게 되면 전 남편에게 나오는 연금을 못 받게 되기
때문에 결혼까지는 생각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라도 만나면서 사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며 애인을 사랑한단다.

초혼이나, 재혼이나, 노년 재혼이나 혼인의 근본은 사랑이어야 한다.
초혼만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재혼은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사랑이 밑바탕을
이뤄야 한다고 믿는다.
노년 재혼도 마찬가지다. 늙었다고 사랑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노년의 사랑은 젊은 시절과는 다르지만 늙으면 늙은 대로 사랑이 있기 마련이다.
늙었을망정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 한다면, 아니 그래야만 하고, 얼마나 아름다운가.
재산 때문에 옴짝달싹 못한다면 재산 많은 상대를 만나든가 아니면 재산을 놓아야 할 것이고,

가난 때문에 주눅 들어 있다면 주눅 든 할머니를 만나면 된다.
서로 상대를 이해하면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해 간다면 노년이지만 사랑도 이룰 것이고
결혼도 순조로워 지리라.
하나 더 보탠다면 노인이 되면 겉모습보다 마음을 보는 눈이 트이는데 상대의 마음을
잘 읽어야 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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