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가 뒷마당에 나타났다. 오랫만에 본다.
여우는 아침나절 다녀간다. 왔다가 금방 간다.
잠깐 쉬러 온 모양인데 별로 쉬지도 못하고 가버린다.
여우는 나를 긴장시킨다. 아니 여우가 나를 긴장시키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긴장한다.
여우만이 아니다. 동물이 나타나면 나는 긴장한다.
그중에서도 여우는 특별나다. 여우가 늘 긴장하고 있어서 나도 따라 긴장하는 모양이다.
여우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여기저기 경계상태를 유지한다.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이리 휙, 저리 휙 돌리며 살펴본다.
늘 소리를 듣고자 귀를 바짝 세우고 있다. 눈으로 확인하려고 노려본다.
여우가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겠으나 본능 치고는 서글픈 본능이다.
부분만 보고 전체를 판단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여우도 편한 마음으로 쉬는 때도 있을 것이다.
털이 지난여름처럼 매끈하지 않고 덥수룩하다.
굴속에서 겨울을 보내느라고 꼼짝 안 했더니 벼룩이 많이 생긴 모양이다.
흙 목욕을 하려나 보다. 개처럼 흙에 등을 대고 이리저리 굴러댄다.
구르면서도 긁는다.
가만히 앉아 졸지 않고 여기저기 긁어댄다.
여우는 약삭빠르고 날렵하게 생겼다. 주둥이와 귀와 눈이 예사롭지 않다.
순한 맛은 찾아볼 수 없이 날카롭다.
하지만 꼬리는 다르다.
몸집에 비해 터무니없이 길고 털이 풍성해서 꼬리만 보면 부잣집 마sk님 같다.
언뜻 보아 날렵한 몸매에 꼬리가 길고 털이 풍만해서 과분수 같아 걷기에 방해가 될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여우는 공격성이 있는 동물은 못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잽싸게 도망가야 한다.
뺑소니만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보니 도망가는 기술이 유난히 발달했다.
뺑소니에도 격이 있다? 술 마시고 운전하다가 뺑소니치는 자와는 격이 다르다.
뺑소니를 필사의 무기로 삼고 살아가는 여우로서는 뺑소니가 부정적인 의미라는 데
불만이 많다.
있는 힘을 다해 도망칠 때 길고 덥수룩한 꼬리가 몸의 균형을 잡아준다.
나름대로 거친 자연의 삶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고 발전시킨
여우의 꼬리가 지혜롭기도 하고 돋보이기도 한다.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 주택가에 여우무리가 출몰해 주민들이 기겁하고 있다는
CBS뉴스 보도가 있다. 뉴스에 따르면 이는 지난 몇 달간 지속되고 있으며 낮과 밤 가릴
것 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단다. 심지어 일부 경우에는 여우가 주택 내부에까지 들어와
주민들이 고충을 토로했다.
주민 로이 카와시마(94)는 이른 아침 여우를 처음 마주쳤다며 “평소처럼 문을 열어두고
그 앞에 서있다가 여우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우가 열린 차고 문을 통해 집안에 들어가 거실을 뛰어다니고 텔레비전 뒤에
숨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주민 로저 코리는 “일할때 꼈던 장갑을 뒷마당에 벗어 두었는데 누군가 훔쳐갔다”며
“범인은 여우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짚 앞 울타리 위에 여우가 서서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을 바라봤다”며 “현재 6마리,
8마리가 곧 큰 수로 불어날 것”이라고 염려를 표했다.
자스민 푸저 역시 바깥에 놔둔 고양이 사료를 여우들이 다 먹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뉴스에 따르면 여우들은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는 기색 없이 다람쥐나 새를 사냥하기 위해
주택가에 나타난다. 심지어 한 주택 뒷마당에서 새끼를 낳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코리는 “동네에 다람쥐가 많다”며 “여우들이 이곳에 자주 나타나는 이유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집 뒷마당 뻔 찔 나타나 과일을 따 먹던 청설모가 뜸해졌다.
엊그제는 운동하러 걸어 나가다가 이웃집 정원에서 어린 여우를 만났다.
어린 여우는 세상물정을 모르니까 별로 무서워하지도 않고 슬금슬금 도망간다.
여우가 어디선가에서 새끼를 낳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지구가 내 것도 아닌데 여우도 같이 먹고 살아야지 여우를 몰아낸다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여우도 먹고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