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찬란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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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까지만 해도 은행잎이 푸르렀는데 오늘 보니 노랗다.
은행나무는 열매먼저 떨기고 그 다음에 잎이 노래지면서 떨어지기 시작한다.
노란 은행 열매가 무수히 떨어져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가을이 되면 노란 은행잎이 온천지를 뒤덮어 환장한 것처럼 금빛을 발하는 걸 보고
사람들은 모두 찬란한 금빛에 반해버렸다. 나무 심을 자리만 있으면 은행나무를 심었다.
거리마다 가로수는 은행나무로 갈아치웠다.
심으면서 칭찬이 자자했다. 병충해도 없다느니, 한번 심으면 몇 백 년은 끄떡없다느니,
이보다 아름다운 가로수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면서 예전에는 왜 미처 몰랐을까 하며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나무랐다.
별별 아름다운 수사를 섞어가면서 칭찬하던 사람들.
드디어 수확의 계절이 다가오고 은행나무는 열매를 많이 맺었다면서 자랑스러워 뿌듯해 했다.
스스로 열매부터 떨어뜨렸다.
떨기면서 맘껏 암내를 풍긴다. 잘 해냈다고 칭찬받고 싶어서다.

사람들은 노란 은행나무가 아름다워서 심었을 뿐 냄새나는 열매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싫은 건 참지 못하는 게 사람이다. 코를 널름대며 노골적으로 싫다고 한다.
발에 밟혀 뭉그러지면 고약한 냄새는 절정을 이룬다.
신발 밑창에 묻어서 사무실로 들어온다. 아! 괴로운 냄새여…….
베어버려라.
사람들은 어떤 암내는 좋아하면서 어떤 암내는 싫어한다.
예쁜 노란 은행나무만 좋았지 나무가 임신하는 건 싫단다.
심을 때는 언제고 지금 와서 열매 열리는 암컷 은행나무만 뽑아내기로 했다고
어느 도시 행정가가 말했다.
잔인하기로 치면 사람을 당할 생물체는 없다. 도끼로 미군 장교도 찍어버리는데
이까짓 은행나무가 무슨 대수이겠는가?
도시 행정가가 휘갈기는 사인 하나로 암컷 은행나무는 위안부처럼 뽑혀 나갈 것이다.

곱고 예쁜 노란빛 은행잎은 잠시 지나가는 과정일 뿐 오래가지 않는다.
은행 열매가 풍기는 냄새 또한 지나가고 만다.
노란 은행잎이 눈으로 즐기는 가을이라면
은행 열매가 풍기는 냄새는 코로 즐기는 가을이다.
달리는 자동차가 뽑아내는 매연보다, 사시사철 흘러나오는 똑같은 커피집 커피 향보다,
일 년 중에서 이맘때 딱 한번 풍기는 냄새, 은행 열매 암내는 가을을 알려주는 전령이다.
나는 은행 열매 냄새로부터 가을을 느낀다.
내 무딘 신경을 자극해서 가을을 알려 주는 은행나무 열매가 고맙다.

날씨가 쌀쌀한가 했더니 갑자기 샛노랗게 변신한 은행잎의 마술이 놀랍다.
어찌나 예쁜지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몇 잎 주워 들고 온다.
작년에도 그랬듯이 곱디고운 은행 잎 두어 개 책갈피에 넣어두고 틈틈이 열어본다.
책갈피 속에서 잠자다 말고 내가 빛을 쏘이면서 깨우면 노란 고운 얼굴로 나를 맞는다.
나무와 작별하던 최후의 금빛 찬란한 얼굴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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