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촌 누님과 점심을 하다가 팔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팔자소관, 사주팔자, 타고난 팔자 이런 말을 많이 들어서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다가
은연중에 밖으로 삐져나온 거다.
팔자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는 관심도 없이 열심히만 살았다.
어디선가 들은 상식으로는 열심히 노력하면 팔자 같은 건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은 들어서
그저 노력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이제 인생 다 살고 나서 되짚어 보건대 노력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되돌아보면 팔자라는 게 있기는 있는 것도 같다.
나는 살면서 팔자나 운명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동창들을 보면 대부분 같은 고향에 같은 나이에 같은 학벌에 같은
목표를 가지고 살았는데 모두 달리 살았고 다른 운명을 지니고 있다.
벌써 죽은 친구가 있는가 하면 치매로 고생하는 친구도 있다.
무엇이 이들의 운명을 갈라놓는가?
변수가 하도 많아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게 운명이고 팔자이리라.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사람의 성격과 심성, 기질과 신체적 조건, 배운 지식과 양심,
시대 상황에 따라 결정을 달리 내리기 때문에 운명이 바뀌고 팔자가 달라지는 것이다.
6.25 전쟁이 막바지에 치 닿던 때에 미아리 고개는 지금처럼 밋밋한 고개가 아니었다.
아스팔트도 아닌 흙길이었고 고개가 그런대로 길고 높아서 걸어 넘어가려면 힘들었다.
미아리 고개 언덕 왼편 끝자락에 미군 쓰레기장이 있어서 매일 미군 트럭이 쓰레기를
싣고 와서 버리고 갔다.
돈암동에 사는 아이들이 몰려와 혹시 먹을 거라도 있나 하고 들추던 생각이 난다.
얼마 전에 미아리 고개에 가 보고 깜짝 놀랐다.
고개는 아스팔트로 잘 포장되어 있는데 길 옆으로 왼 철학관인지 점집들이 그리 많은지,
이 많은 점집들이 돈벌이가 되니까 영업을 하고 있을 게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님과 사주팔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점 보러 갔던 이야기가 나왔다.
“그게 언제냐, 휴전되기 직전인 거 같다. 너의 엄마하고 나하고 같이 점을 치러 갔잖니.
백운학이가 하도 유명하다고 해서 가 봤지. 지금 생각하면 불광동 어디인 것 같아.
줄을 길게 서서 표를 받아 들고 기다렸지. 사람이 그렇게 많았단다.
차례가 돼서 방에 들어갔는데 너의 엄마를 보고 평생 고생만 하다가 죽을 팔자라는 거야.
심평이 필 게 없다는 바람에 너의 엄마는 울고 있고, 그다음에 나를 보더니 대한민국에서
두 번 째 가는 부자가 될 거라는 거야.
점치고 난지 60년이 지난 지금 보면 그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구나, 그렇지 않니?
너의 엄마 고생만 하다가 호강 한번 못하고 죽었지. 내가 이만큼 부자가 될 줄 누가 알았니.
난 대한민국에서 부러울 게 없이 잘 살잖니.
얘, 그 점쟁이 용하기도 하지만, 팔자라는 거 난 믿어. 사주팔자를 잘 타고나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거야. 되는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되고
안 되는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어.“
외사촌 누님의 말을 듣고 반은 믿고 반은 아니요라는 생각이 든다.
누님이 백운학이 말대로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 가는 부자는 못되었어도 친척 중에서
가장 부자가 되었으니 그만하면 제대로 맞췄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의 어머니도 평생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셨으니 그것도 잘 맞췄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엉뚱하게 평생 고생이나 하다가 돌아가실 팔자라는 말 때문에 어머니는 해야 할
노력을 포기하고 말았던 것은 나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 말을 듣지 않았다면 끝까지, 아니면 악착같이 매달려 뜻을 이루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다.
쓸데없는 점쟁이 말을 듣고 믿는 바람에 다가온 기회를 놓지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목표가 아니라 참가에 의미가 있듯이
인생도 성공만이 목표가 아니라 노력하는 과정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