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촌 전철역에서 내리자 앞마당에 천막을 여러 개 쳐 놓고 왁자지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점심을 먹는다. 나는 처음에 무슨 행사가 벌어졌나 했다.
그러나 행사치고는 이상한 낌새가 보인다. 아무나 다 가서 점심을 먹는 거다.
대한적십자 트럭을 세워두고 적십자 봉사 복장을 한 사람들이 2-3십여 명은 돼 보인다.
내가 기웃거렸더니 아무 자리에나 앉으란다. 앉으면 갖다 주겠단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앉았다. 금세 젊은이가 점심 트레이를 가지고 왔다.
트레이에는 고기가 여러 피스 들어 있는 곰국과 밥과 김치, 오징어젓, 도토리묵,
그리고 인절미가 2조각이 담겨 있다.
감귤도 하나 준다. 그러면서 후식으로 커피 마시라고 쿠폰도 석장이나 놓고 간다.
나는 점심은 잘 먹게 생겼다는 생각으로 고맙게 받기는 받았으나 점심을 왜 주는지
알고나 먹어야 하겠기에 옆에 단체로 온 사람들에게 밥을 왜 주는 거냐고 물어보았다.
제대로 차려입고 선글라스까지 낀 아주머니들이어서 무얼 좀 아나 했다.
그런데 우물쭈물 대는 거로 봐서 아는 것 같지 않다.
한 끗 한다는 소리가 그냥 먹어두란다. 자기들도 모르고 먹는 거란다.
옆에서 배낭을 멘 채로 먹으려던 늙은이가 ‘보시’란다.
“보사라니 무슨 보시예요?”
“공주에 가도 밥 주고, 요새는 밥 주는 곳 많아요.”
이 사람도 모르는 모양이다. 아무튼 점심 얻어먹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왜 주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점심을 먹자마자 빈 그릇은 젊은 봉사요원들이 집어간다. 테이블도 다 깨끗이 닦아 놓는다.
봉사요원들이 너무 빨리 움직여싸서 미쳐 먹고 잠시 쉴 사이도 없이 그릇을 냉큼 집어간다.
나는 나이 지긋한 봉사요원을 붙들고 사유를 물어보았다.
밥을 주는 이유는 이랬다.
어느 독지가가 지원해 주는 자금으로 대한 적십자 금촌 지회에서 매달 세 번째 토요일
12시부터 1시 반까지 무료 급식을 준다는 거다.
앞으로 추운 겨울에는 한데서들 어떻게 할지 모르겠으나 금년 내내 잘 진행돼 왔단다.
고마운 일이기는 하다만 아무나 거저 밥을 준다는 건 봉사치고는 의미 없는 봉사 같아서
먹기는 잘 먹었다만 돌아 나오면서 씁쓸한 맛이다.
전철도 거저 타고 왔지, 점심도 거저 먹었지, 커피도 거저 마셨지,
늙은 게 무슨 벼슬이라고 늙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거저 주는 게 많은 나라도
처음 봤다.
거저 주겠다는데 싫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늙은 사람들은 젊어서 열심히 일해서 나라를 이만큼 부강 시켜놓았으니 받을 만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열심히 일한 댓가로 우리의 후손들이 혜택을 누리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받을 것은 다 받았다 하겠다.
노인 급식, 노인 보조금, 6.25 참전, 월남 참전, 5.18 광주 운동 등등 알게 모르게 거저
주는 게 많다 보니, 거저 받는 게 없는 노동자들은 자기들은 덜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맨 날 더 내놓으라고 집회를 여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