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백석동 코스트코에서 한 불락 떨어진 건물 이층에 오피스텔 분양 모델하우스가 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주머니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휴지 두 박스가 든 비닐봉지를
주면서 모델하우스 구경하고 가라며 붙든다.
무슨 짓거리인지 다 알고 있는 지라 듣지도 않고 지나쳐 다닌 지 일 년이 다 된다.
어찌된 일인지 오늘은 아주머니가 큰길 사거리까지 진출해 있다.
건너가라는 파란불만 기다리고 있는데 양손에 휴지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던 아주머니가
다가와 날 붙들고 사정한다.
모델하우스에 가서 출석만 해 달란다.
하루에 열 사람을 모델하우스로 인도해야 8만 원 일당을 받게 되어 있는데 오늘은 한 사람도
인도하지 못했으니 날더러 개시를 해 달라는 거다.
자기도 애들이 있는데 먹고살아야 할 것 아니냐면서 그냥 가서 전화번호만 적고 나오면
전화가 오는 게 아니라 문자가 오니까 지우면 그만이란다.
그러면서 다음에 부인과 같이 와 보겠다고 하면 붙드는 사람도 없다고 어떻게 자리를 피해
나오는지도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듣고 보니 사정이 딱해 보이면서 나는 시간도 많겠다 그까짓 것 가서 사인해 주기로 했다.
모델하우스가 이층에 있는데 아래층 주차장에 들어서더니 아주머니는 내 팔에 팔짱을 끼고
아양을 떤다.
그러면서 손님이 주차장에서 넘어진 다음 모델하우스를 걸어 고소했단다.
그래서 주차장부터는 자신이 손님을 부축해서 올라가야 한단다.
별 이상한 대우를 받으면서 이층으로 올라갔다.
아주머니 말마따나 출석부에 이름하고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손님인척하면서 모델하우스를
잘 구경했다.
세일즈맨에게서 설명도 자세히 듣고, 세일즈맨이 부장님이라며 높은 분을 불러내는 바람에
나는 부장한테 넘겨졌다.
부장인가 하는 사람은 세일즈에 닳고 달아서 손님이 혹하고 넘어갈 정도로 달콤한 말만 한다.
19층, 20층에 몇 집만 남고 다 분양됐다면서 서둘러야 한다느니 계약금만 내면 은행 융자로
60%를 커버하고 잔금 치룰 때 오피스텔을 전세로 돌리면 결국 돈 안 들이고 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일일이 적어가면서 그럴 듯한 소리를 해 댄다.
부장의 소리는 한 귀로 듣고 아줌마가 가르쳐 준대로 아내와 같이 오겠다고 하고 일어섰다.
명함에다가 부로쉬어, 휴지가 든 비닐 봉지까지 들고 모델하우스를 나왔다.
아주머니는 밖에까지 따라 나오면서 고개 숙여 고맙다고 몇 번이고 인사했다.
잠시나마 이 사람 저 사람한테서 극진한 대우를 받기는 받았다만, 이것인 정영 아줌마를
위한 건지 아니면 그것도 아닌지 알 수 없는 어리벙벙한 경험이다.
요새는 세상 돌아가는 게 하도 요상해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모델하우스 측에서는 모델하우스를 보겠다고 오는 손님이 오죽이나 없었으면
아줌마들을 동원해 하루에 10명 손님을 데리고 오면 8만 원 일당을 주겠다고 당근을
제시하지 않았겠나 생각해 본다.
이 조건을 맞추기가 얼마나 어려웠으면 모리꾼 아줌마도 별의별 궁리 끝에 솔직히 까놓고
하소연하는 술책을 쓰게 되었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거기에 말려들어 동조하는 사람은 또 뭐지?
이게 다 가짜 아니냐. 너도 가짜, 나도 가짜, 세상은 가짜투성이…….
참으로 돌아가는 게 요지경이란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