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돈인가, 마음의 휴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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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에 간 김에 롯데마트에 들렀다.
잠실 롯데마트는 십여 년 전 내가 그곳에 살면서 드나들던 때보다 월등히 발전했다.
물건도 다양해졌고 품질도 고급처럼 보이고 무엇보다 활기차 보인다.
내가 찾는 것은 자색양파다. 마트를 다 둘러봐도 자색 양파는 없다. 다 나가고 없는 모양이다.
오는 길에 일부러 연신내 시장에 들렀다. 시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면 과일 채소 가게가
있는데 그곳에서 여러 번 샀던 기억이 나서 들린 거다. 그곳에도 자색양파는 없다.
백석동 홈플러스며 동네 가게까지 다 훑어봤는데 자색양파는 없다.
가는 곳마다 흰색 양파는 많은데 자색양파가 없는 것은 아마 모르기는 해도 공급이 없었던
모양이다.
자색양파는 수요가 많지 않아 가끔 가게마다 없을 때도 더러 있었다.

왜 구태여 자색양파를 찾느냐 하면 날로 먹기에 자색양파는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흰색 양파처럼 나긋나긋하고 쥬시 하지 않고 자색양파는 조금 단단해서 씹는 맛도 있고
쥬시 하지 않아서 깔끔하고 새큼하다. 흰색 양파처럼 맵지도 않다.
양파에 대해서 관심 없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양파의 맛이 확연히 다른데
그 맛은 핫도그를 먹을 때 완연히 나타난다.

오래전, 덴버 콜로라도에서 컨벤션이 열렸을 때의 이야기다.
기조연설자로 콜린 파워 전 국무장관이 나왔었다.
그는 뉴욕 가난한 흑인들이 사는 할렘 출신이다.
그가 군인 시절 해외에서 근무하다가 고향인 뉴욕에 가면 할렘 길거리의 벤도가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핫도그에 자색양파를 얹어 주는데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입속에서 자색양파의 씹히는 맛을 음미하면서 먹는다고 했다.
샐러드에는 자색양파라야 하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매일 먹는다.
미국 식품점에는 자색양파가 일 년 내내 얼마든지 있는데 한국에는 그리 흔치 않다.

자색양파는 건강에도 좋다. 안토시아닌 성분 때문에 자색을 띄는데 자색이 들어있는 채소는
혈관 건강에 좋다고 한다. 자색이 건강에 좋다는 거야 일일이 말해 무엇하랴만 특별히
모세혈관에 좋다니 자색양파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자색양파를 파는 곳이 없어서 다음 날 장날인 곳이 어딘가 들춰봤다.
마침 금촌 장날이 눈에 띈다.
12시쯤 해서 금촌장에 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장이 컸다.
장에 가면 무엇보다 좋은 것은 사람들의 눈빛이 살아서 번득인다는 것이다.
손님도 장사꾼도 돈 앞에 눈빛이 날카롭게 번득인다.
흥정하고 집어 들고 사람 사는 맛이 그대로 묻어난다.
골목에서 참기름 짜는 냄새가 흘러나와 사방 50m를 감싸고, 오징어 굽는 냄새도 감미롭다.
가래떡도 굽고 국화빵도, 호떡도 굽는 손이 바쁘다.

장날인데도 흰색 양파는 많은데 자색양파는 없다.
끝자락에서 겨우 한 집 자색양파 세 부대를 쌓아 놓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읋다꾸나 하고 다가섰다. 중년은 돼 보이는 아주머니가 바쁘게 돌아간다.
아는 것도 많아서 이 손님 저 손님이 묻는 말에 척척 대답해 주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한가할 때를 기다렸다가 자색양파 5 덩어리만 사겠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한 부대에 1만 2천원이라면서 부대로 파는 거지 낱개로는 안 판단다.
부대가 엄청 크다. 적어도 50여개는 들어 있지 싶다.
저 많은 양파를 다 어쩌라고…….
나는 크게 실망했다. 어떻게 안 되겠느냐고 물어볼까 말까하고 서 있는데
안에서 지켜보던 할머니가 나오면서 딸인 아주머니더러 낱개로도 팔란다.
그러면서 5개에 3천원 받으란다.
장사에 닳고 달은 고수인 할머니가 딸 아주머니에게 한 수 가르쳐 준다.
“사겠다는 사람이 나섰을 때 팔아야지, 무슨 짓이냐?”고 야단친다.
나로서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장사라는 건 팔고 봐야지 싸놓고 보고 있는 건 장사가
아니다.
검정 비닐봉지에 싸 들고 다니자니 무거워서 다른 맛있는 거 좀 샀으면 좋으련만 살 수가
없다.
장날 구경만 하다가 잡채 담아놓은 거 3000원 주고 집어 들었다.
자색양파와 잡채를 들고 오면서 전철이 공짜여서 이렇게 멀리까지 왔다가는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돈 내고 전철을 타야 한다면 누가 이까짓 거 사려고 돈과 시간을 허비하면서 이 먼 길을
갔다 오겠는가?

젊은 시절 미국에서 살면서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듣고 살았다.
시간 = 돈. 사람을 정신없이 바쁘게 만드는 공식이다.
그러나 늙고 보니 남아도는 건 시간이요 시간은 돈이 아니다.
젊은 시절에는 시간이 돈이었던 게 맞지만, 늙고 보니 시간은 돈이 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시간은 그대로인데 가치를 돈에다 두니까 시간이 돈이 되었던 것이다.
은퇴 후 시간의 가치를 마음의 쉼에 두니 한가롭고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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