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물가가 비싸다.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이구동성으로 돈이 헤프다고 한다.
십만 원, 이십만 원 들고나가 봐야 하는 것 없이 다 녹아버린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백 달러면 이것저것 많이 사는데 한국에서 백 달러 환전해 봐야 금세 사라진다.
미국에서 가장 흔해 빠진 것 중의 하나가 수박이다.
수박 큰 덩어리 하나에 4천5백 원($3.99)이다.
나는 수박으로 주스를 만들어 놓고 하루에 두세 잔씩 마신다.
한국에서 제철일 때도 6천4백 원 주고 한 덩어리 사다가 먹어보고 그다음부터는 가격이
올라서 엄두를 내지 못했다. 홈풀러스에 나온 수박은 한 덩어리에 2만 6천 원이 붙어있다.
2만 6천 원이면 달러로 22달러다. 수박 한 덩어리에 22달러? 기가 막힌다.
엊그제 종로에 나갔다가 과일상점에 수박이 있기에 물어보았다.
주인은 팔 생각이 없는지 가격이 비싸서 말해 주기 싫단다.
세상에 얼마나 비싸기에 말 못 할 정도란 말인가, 하우스에서 길러서 그렇단다.
결국 가격은 알아내지 못하고 돌아섰다.
미국은 사시사철 수박이 흔하다.
여름에는 캘리포니아 수박을 먹고 겨울에는 멕시코에서 넘어온 수박을 먹지만 그렇다고
가격이 올랐다 내렸다 하지는 않는다.
아무튼 미국에서 식료품 가게에 가면 먹고 싶은 건 다 집어도 마음 편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가격부터 보고 머릿속 계산기를 쉴 새 없이 두들겨야 한다.
Made in Korea 가전제품도 미국이 한국보다 싸다.
미국으로 수출하려면 운송비도 있고 관세도 물어야 하니까 미국에서 비싸야 하는 게
응당하겠으나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보다 월등 싸다.
한국도 사람 사는 곳인데 한국 사람들이라고 싸게 사는 방법을 왜 모르겠는가.
요새는 해외직구가 유행이다.
같은 TV도 해외직구로 사면 가격이 싸다.
같은 물건을 국내에서 비싸게 파는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물건 가격만이 비싼 게 아니다.
살기에도 빡빡하다. 입시 경쟁에서부터 취직 경쟁, 결혼 경쟁, 정년퇴직 경쟁,
경쟁에 짓눌려 죽을 지경이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비교 문화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정부가 은근히 부추긴다.
x 고, x 대학만 나오면 그걸로 인생 뻐기면서 살아갈 수 있다.
남들이 우러러 보는 건지, 부러워하는 건지, 때문에 부모는 물론이려니와 온 집안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기분이다.
무엇인가 잘 못 되긴 잘 못 되었는데 어디서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없다.
오죽하면 기회만 닿으면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할까.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 아니면 자식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한국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이 줄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살기 힘들다는 말이 되겠다.
통계에 의하면 작년 해외 이주 신고자 수는 2200명, 2016년 455명에서 2년 만에
약 5배가 뛰었다.
한국을 떠나는 이유로 자산가는 국내 정치, 경제 상황을, 중산층은 환경, 교육 문제를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오늘은 캄캄해도 내일은 햇빛이 들 거라는 기대는 강 건너 간지 오래다.
친정집이 잘 살아야 시집살이도 수월해지는 건데, 친정집 형편이 각박해서, 친정집도
힘들어하니 시집살인들 오죽하랴.
미국에서 살다보면 가난한 멕시코나 필리핀 출신들은 친정이 가난한 죄로 본인들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한다.
부자 나라 독일이나 일본에서 온 사람들은 친정이 부자니까 자신들도 대우받으면서 산다.
물론 사람들이 다르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부강한 나라 출신인지 아닌지가
대우를 달리 받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친정집 타령이 그래서 나오는 거다.
우리 친정도 과도한 경쟁 없이 수월하게 잘 사는 나라가 된다면 더는 바랄 게 없겠는데……
그러기 위해선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지 말아야 하는데……
너는 너고 나는 나래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