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시원한 사이다를 한 모금 마신 것처럼 속이 후련하다.
누군가는 해야 했을 말을 지금껏 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던 작가들은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리라.
소설가 김금희 씨가 2020년 제44회 이상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것이다.
1월 6일 수상식을 이틀 앞둔 4일 수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유는 수상 계약서에 수상작 단편은 앞으로 3년간 저작권을 출판사에서 행사하겠다는
양도 계약 때문이다.
김금희 작가에 앞서 ‘쇼코의 미소’ 저자로 알려진 최은경 작가도 같은 이유로 수상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문학상은 1977년 도서출판 문학사상사가 제정한 국내에서 대표적인 문학상으로 알려져 있다.
논란이 일자 문학사상사는 계약서상의 표현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하면서 문제가 된
항목을 삭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김금희 작가의 의견을 존중한다” “출판사 측의 갑질이다” “구시대적 발상이다.
아직도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가?”고 지적한다.
이상문학상 시상식은 무기한 연기했다.
수년 전에 해외동포 문학작품 공모전 광고를 보다가 놀란 일이 있다.
당선작 상금이 1백만 원인데 저작권은 해외동포재단에 귀속된다고 쓰여 있는 것을 읽었다.
잘못 적힌 것 같아서 직접 e-mail을 보내 확인해 보았다.
답신이 가관이다. “작품의 저작권은 영원히 해외동포재단에 귀속된다”고 적혀 있는데 그것도
“영원히“라는 단어를 두 번씩이나 강조해서 적어놓았다.
때마침 신문에 저작권에 관한 판결이 실렸기에 읽어보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다는 법원 판결이다.
정부에 속한 기관에서조차 법을 어기면서 작품을 탈취하려 드니 개인 출판사는 오죽하겠는가?
“명예로운 상을 줄 테니 저작권 내놔라, 돈 백만 원 줄 테니 저작권은 포기하라“ 이런 식으로
작가를 윽박질러도 힘없는 작가는 눈물을 머금고 받아야만 하는 현실이다.
어느 문학상도 마찬가지겠지만 이상문학상의 제정과 취지를 보면
<이상문학상>은 요절한 천재 작가 이상이 남긴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뜻으로
매년 가장 탁월한 작품을 발표한 작가들을 표창함으로써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목적과는 달리 출판사가 작가를 위하고 보살펴 주는 것이 아니라 출판사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여 저작권 행사를 하겠다는 것이니 이 얼마나 염치없는 짓이냐.
이기호 작가도 이상문학상 수상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출판가뿐만이 아니라 작가의 권리가 특정 회사나 개인에 의해 침해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도 했다.
지난해 “갑질” 논란이 일었던 것처럼, “미투”가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한국 문학계에도
새로운 변혁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자작권 양도 문제만이 아니라 생년월일을 적시하라는 것 역시 연령차별(age discrimination)에 속한다.
경자년 새해를 맞으면서 한국 문학 세계에서 작가의 권익이 보장되는 세상,
오로지 작품으로 말하는 세상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