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은 흰쥐띠다.
한글로 경자년이라고 써 놓으니 마치 어떤 여자를 욕하는 기분이다.
나는 경자년을 처음 맞는다. 처음 맞으니 새해인 것이다.
경자년만 새로 맞는 게 아니라 매일 아침을 새로 맞는다.
노년기도 새로 맞았다.
새롭다는 것은 늘 궁금증을 유발한다.
어린 아이의 궁금증처럼 그렇게 강렬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다가오는 것들이 궁금하다.
남들은 나를 고령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고령이란 생각이 안 든다. 고령 같지도 않다.
젊어서 했던 만큼 다 하고, 젊었을 때 의욕만큼은 아니더라도 거의 가깝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금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TV를 틀어 뉴스를 챙기고, 신문을 들춰 본다. 사회를 염려하고 고국을 걱정한다.
희망을 점검하고 꿈을 가다듬는다.
노년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노년은 마치 낡고 고장 잘나는 기계인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새 차도 고장 나는 차는 계속해서 속을 썩이고, 오래된 차도 끄떡없이 잘 달리는 차는
새 차 부럽지 않다. 차는 잘 달리는 차가 좋은 차지 새 차라야만, 명품차여야만 좋은 차는
아니다.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계절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봄을 꼽을 것이다.
누구나 봄날엔 화려하고 희망에 부풀어 있었을 것이다. 자신만만했고 무엇이든지 하면 다
되는 줄로만 알고 줄기차게 달리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 행복했다.
인생에서 황금기는 봄철인 이십대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아침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미국인들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 황혼기라고 불리는 88세의 나이인 것으로
조사됐다.
시카고 대학교 사회학과 양양 교수가 지난 1972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32년간 2만 8천명을 대상으로
연속해 조사한 결과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때가 바로 88세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조사 대상자의 33%가 88세를 꼽았다고 하니, 88세까지 살기도 어려운데,
살면 살수록 행복한 모양이다.
나태주 시인의 ‘저녁이 있는 인생’이라는 글에 인생삼여(人生三餘)란 말이 나온다.
<인생에서 여유로운 시간은 하루 중엔 저녁 시간이요, 1년 중엔 겨울이요, 일생 가운데
여유로운 때가 노년이라는 지적이다.
노년의 삶이란 것은 그저 그런 살이 아니요, 그 사람의 일생을 완성하는 삶이다.>
여유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성급하게 굴지 않고 사리 판단을 너그럽게 하는
마음의 상태”라고 쓰여 있다.
영어로는 afford, extra, relax, margin 등이다.
‘마음의 여유’ ‘여유 공간’ ‘삶의 여유’ 듣기만 해도 편안해 지는 느낌이다.
나는 가진 게 너무 많다. 서랍을 열어보면 오래 돼서 바데리가 다 죽은 디지털 시게가
네 개나 된다. 고물 손톱, 발톱 깎기도 여러 개다. 버려 마땅한 줄 알면서도 끼고 돈다.
금년 한 해는 싫든 좋든 경자년과 같이 지내야할 것이니 경자년이 보는 앞에서 다 버려야
하겠다. 빈 공간이 있어야 경자년 복이 들어올 것이 아니더냐.
무엇이든지 채우려고만 들지 말고, 비우는 연습을 해야겠다.
행복이 들어설 여유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