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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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넘버 55번이 손주다.

 

8살 먹은 손주가 농구시합에 출전한다고 해서 가 보았다.
그동안 닦고 기른 실력을 발휘하는 마당이다.
다 고 또래 아이들인데도 큰 아이는 엄청 크고 작은 아이는 아주 작다.
그 나이에는 남자, 여자 상관없이 같이 뛴다.
경기에서 덩치가 작고 크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얼마나 아구악착같이 경기에 임하느냐가 실력보다 앞서 나타나는 나이다.
아마 코치가 손주는 가드 포지션을 지키라고 한 모양이다.
손주는 골대 옆으로 비켜서서 갔다 왔다 뛰기만 한다.
작은 여자아이도 얼마나 악착같이 덤비는지 요리조리 잘도 빠져 다닌다.
골밑 경쟁도 치열해서 공을 잡으려고 손을 치켜들고 아우성이다.
손주는 그냥 서서 보고만 있다가 자기편이 공을 잡으면 저쪽 골대로 달려가서
다시 옆으로 비켜선다.
옆에 서서 있으려면 상대 선수 앞에 서 있다가 공이 오면 낚아 챌 생각은 하지 않고
상대 선수 뒤에 서 있으면 공은 너나 잡아라가 아니더냐.
이쪽 골대로 뛰어오면 똑 같이 반복해서 상대 선수 뒤에 서 있다.
손주네 편 선수가 12명인데 모두에게 출전의 기회를 배분하느라고 선수 교체가 잦다.
내가 보기에 손주가 가장 못하는 선수처럼 보였다.

누구를 탓하랴 나도 그랬으니까.
초등학교 3학년 때다. 운동장에 농구대도 하나 없었다. 축구공 하나 가지고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공 차고 뛰어놀았다.
놀면서도 누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아이들끼리는 다 안다.
그때 우리 반 반장 하던 아이가 가장 똑똑했고 축구도 잘하는 게 지금 손흥민 같았다.
담임선생님이 남자였는데 그 아이를 반장으로 선택하면서 할아버지가 유명한 국어학자라고
했다.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나는 6학년이 되고 나서야 그 아이의 할아버지가 최현배 국어학자라는 걸 알았다.

편을 갈라 축구 시합을 하면 반에서 반장 하는 아이가 나서서 편도 가르고 포지션도
정해 주었다.
그가 내게 정해 준 표지션은 훌빽이었다.
훌빽은 경기 내내 뒤에 서 있다가 공은 한 번 찰까 말까 하는 포지션이다.
오늘 손주가 뒤에서 공도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따라다니는 걸 모면서 옛날 생각이 난다.
손주는 수영, 축구, 태권도, 농구 다 한 번씩 뛰어 본다.
꼭 이겨야 할 필요는 없다. 경험해 보는 것으로 족하다.
수박 맛이 어떤지, 참외 맛이 어떤지 먹어보고 맛을 알면 됐지 구태여 많이 먹으려고
욕심을 부릴 건 아니다.

살아봐서 아는 건데, 인생의 마지막 목표는 다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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