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온종일, 오늘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오후 늦게야 비가 그쳤다. 이층 서재에서 창밖을 내다본다.
아직도 습기에 젖어 있는 나뭇잎과 푸른 풀들이 신선하기 그지없다.
같은 자갈인데도 물속에 잠겨 있는 자갈이 강변에 노출된 자갈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는
까닭은 물체가 물에 젖어 촉촉할 때 때깔이 선명하고 신비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촉촉한 나뭇잎도 태어날 때의 순수한 녹색 그대로다.
더군다나 봄을 맞이한 나뭇잎이 우주의 기를 받아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맑고 깨끗한 잎이 세상의 아름다움은 이런 것이라고 말해 주고 있다.
막내딸 출산일이 5월 6일이다.
세상에 출산 날짜까지 다 알고 있으니 무슨 세상이 이러냐!
코비드19 사태가 벌어지면서 아기 낳으러 병원에 갈 일이 걱정이다.
산모 외에 외부인은 한 명으로 제한한다는 바람에 그렇게 해서라도 안전하다면
더 이상 바랄 게 뭐가 있겠나 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환자가 늘어나면서 외부인 한 명이라는 제한 조건이 사라지고 말았다.
산모 외에 아무도 병원에 들어올 수 없단다.
이 바람에 딸은 겁먹기 시작했다.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방법도 여러 가진데 병원 출입을
금지하는 바람에 병원이 마치 병을 옮기는 근원지 같은 느낌마저 든다.
연구 끝에 딸이 묘안을 하나 강구해 냈다.
진통을 미리 준비했다가 아침 일찍 병원에 들어가 아기를 낳고 오후에 아기와 함께 퇴원
하겠단다. 스케줄을 그렇게 맞추면 가능하다니 별난 세상 다 보겠다.
사주팔자는 어떻게 하라고 마음대로 시간을 정한단 말인가?
참말로 어처구니없기는 해도 그렇게 해서라도 코로나바이러스를 피하겠다니 할 말은 없다.
엊그제 신문에 이웃 도시 요양병원에 코로나바이러스가 휩쓸면서 직원 21명과 환자까지
합쳐 54명이 감염됐다고 했다. 그중에 9명이 사망했고 한 명이 오늘 또 사망했다.
사망한 환자들은 모두 딸이 애 낳으려고 하는 그 병원에서 사망했다.
딸이 겁먹을 만도 하다.
카톡으로 어떤 아기 사진 한 장이 날아들었다. 딸이 보낸 거다.
아기가 쓰고 있는 ‘아기 투명 안면 보호대’를 구해 달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상품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누가 고안해 냈는지 별것이 다 있다.
아내는 구글을 들추고 찾아보았으나 ‘아기 투명 안면 보호대’를 파는 곳은 찾지 못했다.
딸이 너무 유별을 떠는 게 아니냐 하면서도 아기 출산을 축하하러 오는 사람들을 말릴 수도
없고, 보여주기는 해야 할 터인데……
결국 고안해 낸 게 유별난 기획이다.
코로나 사태 기간에 아기 낳는다는 것도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