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격리 중에 태어난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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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딸이 아기를 낳은 지 한 달 반이 되었다.
달 반이 넘도록 아기는 보지 못했다.
30분이면 가 볼 수 있는 지척이건만 사진 두 장 받아보았을 뿐이다.
위로 딸 둘이 있고 세 번째 아기가 아들이다.
위로 딸 둘이라고 해봐야 네 살, 두 살이어서 한창 엄마를 찾을 때다.
아기 낳으러 병원에 가기 전에는 두 딸과 함께 코로나 대피령으로 집에 갇혀있어야 하니까
지루하고 따분해서 그랬겠지만, 뻔 찔 카톡을 걸어왔다.
카톡 동영상 속에서나마 두 손녀의 노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재잘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한번 걸려오면 꽤 길게 통화했다.
카톡이 매일 걸려와 한 시간도 좋다 두 시간도 그만이어서 나중에는 할 말도 없다.
인제 그만 걸어왔으면 했다.
카톡이 걸려오면 나는 아내에게 받으라고 하고 아내는 내게 떠넘긴다.
집에서 해산날만 기다리려니 할 일없어서 카톡이라도 붙들고 시간을 보내려는 심산인 것
같다.

지금 추세로는 아이 안 낳는 게 유행이라는데, 결혼도 하지 않는 게 유행이라는데,
딸이 세 번째 애를 낳는 게 조금은 시대에 뒤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면도 없지 않았다.
한국처럼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살아본 사람은 내가 낳은 아이는 나보다 더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겠지, 지레 겁먹고 아예 결혼이고 아이고 포기하는 추세지만,
미국 사회는 아직 그렇게까지는 경쟁이 심하지 않아 그런대로 살만하고,
서로 비교하지 않는 분위기로 이루어진 문화여서 행복지수가 자연스럽게 높은 것도 사실이다.
놀기 좋아하는 인종들 틈바구니에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한국인이 살기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나도 셋을 낳아 길러봤지만 둘보다는 셋이 낫다는 생각이다.
기르기에 힘들지 않으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은 세 번째 아이는 거저 기르는 거나
다름없다.
지 언니, 오빠 따라 하다 보면 저절로 잘한다.
돌이켜 보면 셋째 아이가 없었다면 인생의 낙은 절반으로 줄었으리라.

딸이 아기를 낳은 다음부터는 카톡이 뚝 끊겼다.
미역국이며 떡볶이까지 해서 보내줘도 잘 먹었는지 어땠는지 기별이 없다.
처음에는 아기 때문에 잠도 못 자고 두 시간마다 먹이랴, 바빠서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끊겨버린 카톡은 다시 연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는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다.
아기 사진이라도 보내라고 했더니 겨우 한 장 보내준다.
그리고 보름이 넘도록 카톡도 없다.
뻔 찔 해대던 카톡이 뚝 끊겨서 시원하기도 했지만 이젠 궁금해진다.
궁금하다 못해 답답하다.
아내가 거꾸로 카톡을 해서 상황을 물어보곤 한다.
입장이 뒤바뀌면서 이젠 내가 먼저 카톡으로라도 걸어야 아이들 얼굴이라도 보게 된다.
왜 카톡도 안 하느냐고 물어보면 아기가 잠만 자는데 떠들면 깨기 때문에 카톡이고 뭐고
걸 수 없단다.
하기야 아이 둘에 갓난아기까지 셋이다 보니 엄마로서 얼마나 바쁘겠는가.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가서 도와줄 수도 없고, 도와주기는커녕 얼굴도 보지 못하니
답답하기는 이쪽이 더하다.
아직도 갓난아기 얼굴도 보지 못했으니 어쩌면 이러다가 백일을 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나지 못하는 세월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은근히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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