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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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 1577-1599)의 초상화.
오일 페인트 75 x 50cm
귀도 리니(Guido Reni)의 유화,

16세기, 로마 교황청은 이미 전통적으로 싼탄첼로 다리에서 죄수들을 처형해서 목을 난간에 걸어놓았다.

1585년에는 교황 식스투스 5세가 주창한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에 의한 범죄 소탕으로 인하여

소위 로마 시장에 멜론 수 보다 싼탄첼로 다리에 내걸린 머릿수가 더 많다는 말처럼 하루에 18개의

잘려진 머리가 다리 난간에 내걸리기도 했다.

싼탄첼로 다리에서 처형당한 베아트리체 첸치는 22세의 아리따운 귀족 여인이었다.
여인의 목이 잘려 다리 난간에 결려있는 것이 로마인들에게 있어 오만한 귀족 계급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메김 되어 왔다.
16세기 로마의 귀족인 베아트리체의 아버지 프란시스코 첸치는 악랄한 인물로 유명했지만
첸치 궁전에서 호화롭게 살았다.
두 번째 부인과 아들을 낳고 살면서 온갖 못된 짓을 다하다가 전처가 낳은 친 딸인
베르트리체를 근친상간 하는 악행을 저지른다. 그것도 상습적으로.
견디다 못한 베르트리체는 교황청에 신고하였으나 아버지 프란시스코는 귀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가볍게 처벌되고 석방된다.
아버지는 딸이 신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 성에 감금시켜놓았다.
둘째부인과 하인들이 프란시스코 첸치의 악행을 보다 못해 죽이려고 독약을 먹였으나 죽지
않았다.
이번에는 높은 곳에서 떨어트려 낙상사로 위장하였으나 교황청 경찰의 조사로 모의가 탄로
나고 만다.
가담자 모두와 딸 베아트리체가 싼탄첼로 다리에서 처형당해 목이 다리 난간에 걸리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베아트리체(1577-1599)가 22세 때 처형을 당했으니 그림은 그녀의 나이 20세 전,
훨씬 어린얼굴로 보인다.
친아버지 프란시스코에 의해 상습적으로 근친상간을 당했으니 그녀의 나이 어려서부터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의 눈동자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수심이 가득하고 의심어린 눈망울로 보인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바라는 애절한 눈빛이 처절하다 못해 누가 물어보기라도 한다면
한보따리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기세다.
한편 그녀의 입술이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보이는 것도 주목해야할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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