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나는 책 읽는다는 친구가 가장 반가웠고 책이야기 하는 친구가 고마웠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글을 읽는 다는 것이고 글을 읽으면서 그 뜻을 헤아릴 줄 아는 친구를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그림에도 숨겨진 뜻이 있고 그 뜻을 찾아 볼 줄 아는 친구는 그리 많지 않다.
글도 그렇다. 기사로 쓰인 글이 아니고 문학적 의미로 쓰였을 경우 글의 뜻을 감지해 낸다는 것은
웬만한 독해력이 아니면 어렵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시는 말해 무엇하랴.
입
고영민
경주 남산을 오르다보니
산기슭에 목 없는 석불 하나가
오도카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한 손은 무릎 위,
다른 한 손은
손바닥을 하늘로 하여 가슴 아래께에 놓여 있는데
누가 장난으로
그 위에 빨간 방울토마토 하나를 올려놓았다
저걸 어떻게 먹으란 말인가
석불은 입이 없어
마냥 들고만 있다
입이 생길 때까지,
입이 생길 때까지,
1100년 된 남산 약수곡 석조여래좌상, 머리 없는 석조여래좌상은 높이 109m,
어깨너비 81m, 무릎너비 116m에 통일신라때 불상이다.
일제강점기인 1941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경주 남산의 불적’에 소개될 때도 머리가 없는
상태였다.
원위치는 알 수 없으나 옮겨온 현재 위치에 반듯이 놓여있다.
주변에 불신을 받치는 3단 대석도 비교적 온전하게 노출돼 있다.
시인은 석불이 입이 없으니 토마토를 먹을 수 없어서 들고만 있다고 했다.
실제로는 머리 전체가 없는데 유독 입만 강조하고 싶어 한다.
다시 말하면 입이 없어서 먹을 수 없다고 하는 말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된다.
아마도 언론의 자유가 없던 시절에 쓴 시 같다.
입이 생길 때까지, 입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만,
시대가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만 말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한다.
권력은 영원할 수 없으니 기다리면 때가 온다는 암시를 해 주고 있다.
뜻밖에도 금년에 신라문화유산 발굴 조사단이 경주 남산 약수곡 절터에서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머리를 발견 했다.
불두는 하대석이 있는 큰 바위 옆 땅속에 머리 부분이 묻힌 상태로 발견됐다. 얼굴은 왼쪽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안면 오른쪽 일부와 오른쪽 귀 일부에서는 금박이 관찰됐다.
미간을 장식했던 둥근 수정이 불두 인근에서 발견됐고, 주변에서는 소형 청동탑, 소형 탄생불상 등도
함께 출토됐다. 불두의 크기는 높이 50㎝, 너비 35㎝, 둘레 110㎝, 목둘레 83㎝, 귀 길이 29㎝,
귀와 귀 사이 35㎝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천 년 전 유물이 고스란히 발견 된 것과 같다. 온전한 석불이 완벽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으니
얼마나 반가운 일이냐.
미소 짓는 입모습이 엊그제 조각한 불상 같다.
금세 입을 벌려 토마토를 한 입에 넣을 것 같아 보인다.
하고 싶은 말 다 할 것 같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