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 만에 머리 깎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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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으로 난생처음 넉 달이 되도록 머리를 깍지 못했다.

하얗고 긴 머리가 귀를 덮고 늘어지는 게 산신령 같다.

이제 더는 참을 수 없다. 어떻게 해서라도 머리 깎는 곳을 찾아내야 한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도 그렇지 넉 달이 넘도록 이용업은 규제를 풀지 않으니 어디서 머리를

깎으란 말인가?

LA 지역은 카운티에 따라 여는 지역도 있다던데 샌프란시스코 지역은 9개 카운티가

모두 열지 못 한다. 미장원도 안 열어서 헤어컷을 아는 사람들끼리 컷해 준다고 들었다.

 

바로 지난주의 일이다. 산타클라라 카운티만은 이용실을 연다는 반가운 뉴스다.

제때 전화로 확인하니 한국인 이발소가 열었단다. “얼씨구 이게 웬 떡이냐단숨에 달려갔다.

고속도로로 한 시간을 달려 찾아갔다.

처음 가보는 이발소인데 조그마한 게 지저분하다.

중앙에 이발 의자가 하나 있고 벽 쪽으로 소파가 있다.

마스크를 쓰고 이발 의자에 앉아 있는 손님과 역시 마스크를 쓰고 머리를 깎는

이발사뿐이다. 다음 차례는 나다.

손님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한산한 게 영업 해제됐다는 걸 사람들이 모르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머리를 깎을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발사가 나만큼 늙었다.

평생 남의 머리만 깎아온 베테랑 같다. 어떻게 깎아 주라느냐고 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긴 머리를 하고 왔으니 이발사가 봐도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치켜 깎아 달라고 했다. 모처럼 깎는 건데 모조리 깎아버려야 시원할 것 같아서 그랬다.

깎여 내리는 머리카락을 보니 5~6cm는 되고도 남는다.

TV도 없고 라디오도 없는 조용한 공간의 분위기를 깨려는지 이발사는 문재인 정부 헐뜯는

소리로 지루함을 메꾼다.

프로 이발사가 돼서 금방 깎았다.

나는 얼마냐고 묻지도 않고 지갑을 열어 있던 돈 다 꺼내 줬다.

이발사는 당황해하면서 이거 너무 많은데요?“ 한다.

나는 머리 깎는 곳을 찾았다는 게 반갑고 머리 깎았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라 그랬다.

 

다음에 또 오시라는 말을 귓전에 흘리면서 차를 몰고 집으로 오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세상에 머리 깎고 이렇게 기분 좋아본 일이 일찍이 없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코로나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2차 확산이 벌어진 것이다.

캘리포니아가 코로나 레드존으로 지목되면서 샌프란시스코 9개 카운티 레스토랑이며 술집,

이용실 다 닫으란다.

레스토랑은 실내 개장으로 들뜬 마음에 식재료를 잔뜩 준비했는데 도루 닫으란다고

아우성이다.

산타클라라 카운티도 이발소 문을 다시 닫아야 한다.

하루 반짝 여는 바람을 타고 잽싸게 깎았으니 망정이지 내일로 미루었다면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내가 알아서 한 일은 아니지만, 어떤 때는 하는 일마다 마음먹은 대로 척척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행인 것은 운 좋게도 그날을 노치지 않고 머리를 깎았다는 것이고,

아쉬운 것은 운 좋은 날 로토 티켓을 샀다면 어땠을까? 하는 속 쓰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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