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이건 말건 머리는 사정없이 자라고 만다.
달 반 만에 다시 머리 깎으러 먼 길을 떠났다. 고속도로로 한 시간이나 달려갔다.
가기 전에 전화를 걸어보고 열었는지 안 열었는지 확인하려 했으나 허탕이다.
전화벨이 아무리 울려도 받지 않는다. 아무려면 한국 사람이라 그렇겠지 하고 가 보았다.
창문에는 ‘이발’이라는 빨간 네온사인이 켜있다. 아침 열 시인데 문이 열려 있다.
내가 첫 손님인 것 같다. 전화를 안 받기에 이발사가 지금 출근했나 했다.
몇 시에 문을 여느냐고 물어보았다.
아무 때나 손님 있으면 연단다.
그러면 왜 전화는 안 받았느냐고 한마디 해 주려다가 그만뒀다.
머리 깎으면서 한다는 이야기가 애들 때에 서울 혜화동에서 놀던 이야기를 한다.
듣고 보니 나와 같은 혜화초등학교를 나왔다. 부인도 혜화를 나왔단다.
옛날이야기에 죽이 맞아 떠들다가 나이가 몇이냐고 물어보았다.
미안하지만 나이는 영업 비밀이란다.
영업비밀이라는 바람에 제임스 노인이 생각났다.
오래전에 제임스라는 미국 노인이 부동산업을 하고 있었다.
고객의 집을 팔아주고 고객에게 집을 안내해 주는 직업이다.
제임스가 내게 자랑삼아 팔뚝 소매를 걷어 올려 알통을 보여주면서 내 근육을 보란다.
바짓가랑이를 치켜 올리면서 근육 자랑을 한다.
내 나이가 몇으로 보이느냐고 묻는다.
나는 제임스를 기분 좋게 해 주느라고 일부러 육십 정도로 보인다고 치켜세워줬다.
제임스는 는 기분이 좋아서 작은 소리로 내 귀에 대고 팔십 육 세요 하면서 웃는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내 나이를 가르쳐 주지 않는단다.
내 나이를 알면 고객들이 도망가기 때문이란다.
그때는 참 어처구니없는 말처럼 들렸지만, 내가 늙고 나서 느끼는 거지만 나이가 많다는 건
자신감을 잃게 하고, 젊은이들 앞에서 주눅 들게 만든다.
나도 책을 몇 권내면서 저자 소개에 나이는 밝히지 않았다. 나이를 밝혔다가는 독자들이
책을 사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랬다. 하지만 지난번 단편집을 내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왼팔이 없는 장애인 소녀가 오른팔로만 골프를 친다.
골프를 잘 쳐서 주니어 챔피언십을 차지했다는 TV 뉴스를 보았다.
보통 소녀가 주니어 챔피언십을 먹었다면 TV에서까지 보여주리만치 빅뉴스는 아니지만
장애인 소녀였기 때문에 뉴스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날, 뉴스를 보면서 고령이라는 것은 약점이면서 장점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편집 약력 가장 윗줄에 1943년 춘천에서 태어났다고 떳떳하게 적어놓았다.
나이가 영업비밀이라는데 구태여 알아내려고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작 지켜야 할 영업 비밀은 다 털어놓는 바람에 저절로 알게 되었다.
사실 산타클라라 카운티는 야외 이용업을 허가 했을 뿐 실내 영업은 금지다.
자기도 어제 파캉장에다가 이발의자를 차려놓고 머리를 깎아보았는데 안 되더란다.
바람이 불어 싸서 머리가 날리는 바람에 마음먹은 대로 깎이지도 않고, 풀무질로 머리를
적셔놓으면 금세 말라버린단다. 하면서 실내에서도 문가에 의자를 놓고 문을 열어놓으면
실외나 다를 바 없단다.
앞집 미용실을 가리키며 보란다. 저 가게도 어제 하루 야외에서 손님 머리를 하더니
안 되겠던지 오늘은 천막을 치고 천막 안에서 머리를 한다.
코로나19는 세상을 이상한 방향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생뚱맞은 짓거리를 하게 만든다. 거역했다가는 죽을 테니까 거역할 수도 없다.
살다 살다 별일을 다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