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박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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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여러 날째 아침에 커튼을 열면 하늘이 찌뿌드드한 게 영 기분이 좋지 않다.
한국은 여름 장마가 일찍 왔다는데 샌프란시스코는 비는 없고 날씨만 흐리다.
흐린 게 아니라 안개인지 연기인지가 끼어있어서 흐린 것처럼 보인다.
오전에만 흐리고 오후로 들어서면 다시 맑아진다.
내가 일어나자마자 창밖부터 내다보는 까닭은 호박 넝쿨이 밤새 잘 지냈나 보기 위해서다.
녹색 잎이 싱그럽고 중간 중간에 노란 호박꽃이 피었다.
호박꽃을 보면서 치사하게 저 꽃이 암컷 꽃이냐 수컷 꽃이냐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호박이 영글어 딸 때마다 호박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호박은 종자를 퍼트리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열정을 쏟아 붓는데,
호박이 익을 만하면 따 가니 얼마나 속상해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 호박 줄기를 비틀어 따는 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면서도 다음 호박은 언제쯤 영글까? 호박잎을 들춰가며 살핀다.
사람은 참 못돼먹었다고 생각하곤 한다.
호박은 인간에게 번번이 당하면서도 씨를 남겨야 한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암꽃과 수꽃을 번갈아 피운다.
그것도 모르고 애지중지 아기 호박을 매달고 꽃을 피우는 호박 넝쿨을 보면 반갑기도 하지만 애석하기도 하다.
열심히 키워봤자 도루묵이 될 것을……

한여름, 내가 어려서 살던 집 울타리를 호박 넝쿨이 감싸고 있었다.
엄마는 저녁밥을 짓다 말고 울타리로 나가 호박을 뚝 따다가 반찬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낮에 호박이 달린 것을 확인하고 다니셨던 모양이다.
어떤 때는 아직 덜 영근 애호박을 따다가 반으로 갈라 가지런히 썬 다음
밥솥에서 밥이 자작자작 다 되어갈 때 뚜껑을 열고 밥 위에 얹어놓아 살짝 익힌 호박에
갖은양념을 넣은 간장을 뿌려 내놓았다.
양념간장이 묻은 호박을 먹으면 호박 맛은 어디로 가고 양념간장 맛뿐이다.
씹을 것도 없이 우물우물하다가 넘기려면 그때서야 호박 향기가 입안에서 감돈다.
밥맛이 배인 호박 맛이 밋밋하면서도 감미롭다.
그때 그 맛이 그리워서 아내에게 주문해 보지만 그 맛을 재현해 내지 못한다.
손맛이 다른 두 사람은 나름대로 개성이 있어서 서로 다른 맛이 나온다.
같은 방식으로 호박을 쪄내지만 엄마의 맛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엄마의 맛이었고,
아내는 새로운 맛을 창조한다.
지금은 전기밥솥을 사용하기 때문에 밥솥 대신 찜통에 넣고 빨리 익혀내야 한다.
호박을 먹을 만큼 익히기로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지만, 밥맛이 배어있지 않은
찜 호박 맛은 맨 호박에 불과하다.
간장도 조선간장이 아니라 기꼬만 간장이어서 양념간장 맛도 다르다.
세월과 함께 맛도 변해간다. 사는 지역에 따라 맛도 다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다시 깨어나서 오늘날의 애호박찜을 맛보신다면 뭐라고 하실까?
너그러운 어머니였으니 타박은 하지 않으시리라.
애호박찜이 어린 시절 먹어 보았던 어머니의 맛을 되새겨 보게 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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