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꽃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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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동네를 돌다 보면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하게 빛나는 정원이 눈에 띈다.
엊그제 지역 신문에까지 등장한 평범한 가정집 정원이다.
특이한 것은 토종 식물로 정원을 꾸몄다는 점이다.
토종 꽃은 이민 온 꽃에 비해서 흐리고 얌전한 색옷을 입었다.
산업의 발달로 모든 게 상업화해가는 마당에 토종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이미 귀하고
대접받아 마땅하리라.
어느 나라나 토종은 화려하거나 현란하지 않다. 식물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도 그렇다.
사람으로 치면 시골 사람이 토종에 가까울진대 시골 사람들은 순진하고 순박하다.
시골 사람들은 진국 한 면이 있는데 꽃도 그렇다.

외국에서 수입해 들여왔거나 상업적으로 개종한 꽃은 색깔부터 화려하고 눈에 띄게
찬란하다. 첫눈에 반하지 않는다면 누가 돈까지 지불하며 사겠는가?
장사꾼들도 다 머리를 써서 단번에 반해서 지갑을 열게끔 만드는 거다.
하지만 토종 꽃은 어딘가 희미하고 순박해 보인다.
한국에서도 토종 꽃은 대우를 못 받는 것처럼 아메리카 대륙의 토종 꽃도 소외되면서
서러움을 겪는다.
이런 마당에 토종 꽃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우러러볼 만하다.
노란색의 Lavender Cotton, 정말 새의 눈처럼 생겼다 해서 Bird’s-eye Gilda,
주황색 캘리포니아 퍼피와 버드 아이를 섞어 놓은 꽃밭이 은은하게 예쁘다.
회색 돌이 섞인 흰색 작은 조약돌로 말라버린 개울(Dry Creek)을 만들고 해묵은 바위를
군데군데 배치해 놓음으로써 자연을 운치 있게 살렸다.
집주인이 앞마당 정원에 공을 꽤 많이 들였을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토종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애국자처럼 보이는 까닭은 왜일까?

내가 어려서 보아온 꽃은 햇볕 잘 드는 마당 한켠에 화단을 만들고 봉선화, 분꽃, 과꽃,
채송화, 국화, 백일홍 같은 꽃씨를 뿌려 가꾸던 생각이 난다.
지금은 이런 꽃들은 꽃 축에도 끼지 못한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정말 토종 꽃인지, 바다 건너서 온 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딘지 모르게 우리 꽃으로 알고
심었다. 우리 꽃은 천대받는 것 같고, 환영 받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이 바뀌면서 서양식 머리를 하고, 서양식 옷을 입고, 말도 서양식으로 멋 부리거나
치장하지 않으면 대우 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다보니 토종은 시시해 보이는 거다.
시시해 보이는 토종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도 토종이겠지.
토종은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그 땅에서 죽을 사람이고, 땅을 죽음으로 지키는 사람이니까
애국자로 보일 것이다.
영화 ‘집으로’의 할머니처럼, 워낭소리의 할아버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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