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Zoom)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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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일과 6일은 딸들의 생일이다.
2년 터우리인데 어쩌다가 하루 차이로 태어났다.
어려서는 생일이 하루 간격으로 있는 바람에 둘을 합쳐서 한꺼번에 해 먹은 일도 있다.
이제는 각자 나가서 사니까 자기들이 알아서 생일을 차려 먹는지 마는지 늙은 우리는
알 길이 없었다.
마침 코비드 사태로 말미암아 밖에 나가 먹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여서 먹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줌’으로 생일 파티를 대신했다.
줌은 거리에 상관없이 여러 사람이 모여서 왁자지껄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화면 속에서나마 가족이 한데 모여 즐거운 파티를 한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실제로 모여 앉아 떠드는 것처럼 서로 웃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화면은 아이들이 차지하고 어른들은 아이들 이야기로 한 말 또 하고를 해 대지만
들은 이야기 또 들어도 지겹지 않다.
한 배에서 나온 가람들은 어딘가 통하는 데가 있어서 조그만 건수에도 웃음이 터진다.
며느리는 저녁에 초급대학 일본어 강의가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강의라고 해 봐야 집에서 줌으로 하는 강의지만 떠들면 안 돼서 그 시간만큼은 식구 모두
협조해서 조용해야 한다.

막내딸은 19일부터 출근한단다. 세 아이를 베이비시터에 맡기자면 돈깨나 들 것이다.
마침 둘째가 기저귀를 떼어서 그만큼 돈이 덜 들고, 갓난아기는 손이 많이 가서 돈이 더
든다니 별걸 다 세분화해서 임금을 먹이는 세상이라 얄궂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큰딸은 집에서 줌으로 강의하기 때문에 출근하지 않는 이 점이 있다.
아들도 집에서 근무하고 며느리도 집에서 근무한다.
집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이 점이 많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줌으로 공부하기 때문에 재택근무의 경우 집에서 일하면서
아이들을 옆에 앉혀놓고 감시할 수 있어서 좋다.
아이들은 어른이 없으면 마음이 해이해 져서 제멋대로 지지고 볶는다.
어른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그나마 책상에 붙어 앉아 끄적대기라도 하니 부모가 출근하는
집 아이들은 모여서 공부 감시해 주는 곳도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 가는데 변하는 세상을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면에서
소외된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소외된다는 것은 옳은 말이 아니다.
내가 듣는 금요일 저녁 ‘줌’ 문학 강의에 열여섯, 일곱 사람이 듣는데 늙은 사람도 꽤 있다.
주로 할머니들이 ‘줌’ 강의에 참석하는데 줌 강의라는 게 젊은 강사도 익숙하지 못해서
이것저것 우왕좌왕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보다도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들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가 하면 아예 다음부터는 뭐 뭐를 설치해서 어느 버튼을
눌러 주라는 둥 코치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무엇을 하든 열심인 사람은 나이가 문제되지 않는다. 열심히 하다 보면 나이도 잊게 되고
아는 것도 많아진다.
어디선가 읽은 글이 생각나는데
“잠을 자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깨어 있는 사람은 꿈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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