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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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인야드 로드와 알몬 로드가 만나는 삼거리 코너의 집이 젠슨 씨네 집이다.
늙수그레한 젠슨은 벌목 전문가이다.
우리 집 침엽수도 그가 베어냈고, 딸네 집 야자수도 그가 잘랐다.
봄철이면 젠슨은 이집 저집 다니면서 거목을 베어내기에 바쁘다.
미국 주택가는 나무가 잘 자라서 심은 지 불과 몇 년 안 돼도 부쩍 자라있다.
나무를 자르는 것은 위험한 일이어서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나야 일만 시켰지 그의 가정생활까지 세세히 알아내는 재주는 없다.
하지만 아내는 다르다. 몇 번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것저것 잘도 알아낸다.
딸네 집 야자수를 베어낼 때의 일이다.
아내가 돈을 주는데 젠슨과 같이 일하던 젊은 여자가 돈을 챙긴다.
아내가 젠슨더러 딸이냐고 물어보았다.
젠슨은 딸이 아니라 자기 부인이라고 한다.
수무 살은 더 어려 보이는 딸 같은 여자가 아내라니?
나의 아내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백인인 젠슨은 딸 같은 동양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집을 아내 명의로 해 주었단다.
그리고 아내에게 청소년 아들이 있는데 같이 산다고 했다.
집을 아내의 명의로 사 준 지가 십 년도 넘었으니 그런대로 같이 산 지도 오래됐다.
어쩐지 일하고 나면 돈은 젊은 여자가 챙기더라 했지…….

젠슨네 집 앞을 아침저녁으로 지나간다.
나는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정원의 작은 소나무가 왜송이라는 걸 금방 알아보았다.
정원수치고 왜송은 매우 비싸다. 앙증맞은 소나무가 자라지도 않고 늘 같은 모양을 지니고
있어서 정원이 변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에서 정원을 가꾸는데 일본인 정원사는 알아준다.
일본인 정원사는 정원을 보는 눈이 다르다. 한 번 자기가 가꾸기로 책임진 정원은 정말
아름답게 꾸미고 잘 가꾼다.
자신이 정원의 정수를 알고 가꾸기 때문에 모양이 제대로 난다.
흔해빠진 멕시칸이나 월남인 정원사와는 격이 다르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일본인 정원사가 그런대로 꽤 있어서 우리 집도 일본인 정원사가
가꾸었었다.
지금은 일본인 인구가 줄어들면서 일본인 정원사도 사라졌다.
정원사로는 이탈리아 정원사를 최고로 치고 그 다음이 일본인 정원사다.

젠슨네 집 앞마당 정원을 보면서 일본식 정원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집 뒷마당에 감나무가 두 그루 있는 것을 보고 이 집 전 주인이 일본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울타리와 뒷문을 일본 문양으로 했다는 것이 전 주인이 일본인이었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더군다나 뒷문에 개 창문을 만들어 놓은 것은 일본인의 풍습이 그대로 나타나는 점이다.
개는 밖에서 나는 발소리만 듣고도 짖어댄다.
개가 물체는 보지 못하고 소리만 듣고 짖어댄다면 개로서는 얼마나 답답한 일이겠는가?
아무리 말 못 하는 짐승일지라도 개도 스스로 판단력이 있기 마련인데,
공격해야 할 대상인지, 도망가야 할 대상인지, 적인지 내 편인지 구분은 눈으로 보아야
판달 할 수 있는 거다.
일본인 전 집주인은 개의 속사정을 헤아려 개 창문을 만들어 준 것이다.
개의 키 높이에 구멍을 뚫어줌으로써 개의 답답함을 해소시켜 주었다.

내가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개는 창문을 통해 내다보고 짖어댄다.
낯선 사람이라는 것을 주인에게 알려주는 데 열심이다.
충성심 강한 개도 부럽지만, 개의 의중을 헤아려 주는 주인도 부럽다.
서로가 의지하며 산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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