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체국 가는 걸 좋아한다.
우체국은 좋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체국에 가면 무엇인가 보내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소식을 전하려는 사람, 선물은 보내려는 사람, 축하 카드를 붙이려는 사람.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고 해도 우체국을 통해야만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리운 사람들에게 책을 보내려고 우체국에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긴 줄이 문 앞까지 이어져 있다.
줄이 긴 까닭은 2m씩 떨어져서 서 있기 때문이다.
내 딴에는 줄의 마지막 사람 뒤에 간격을 두고 섰다.
잠시 후 누가 나를 부른다. 뒤돌아보았더니 내 뒤에도 긴 줄이 있다.
날더러 새치기하지 말고 저 뒤에 가서 서달란다.
“아이고머니나“
나는 우체국에 들어서면서 앞쪽의 줄만 보았지 뒤쪽에도 줄이 이어져 있는지는 몰랐다.
“미안해요.” 한마디 하고 뒤로 물러섰다.
나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너나없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직원들도, 고객들도 모두 가양각색의 마스크를 쓰도 있다.
마스크를 쓰는 게 일상화 돼서 마스크 썼다고 해도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이상하게 보인다.
물론 마스크는 병균의 침투를 막기 위해 쓰는 것이다.
하지만 마스크를 쓰면 금언의 상징처럼 보인다.
마스크를 쓰고 말하면 발음이 명확하지가 않아서 잘 알아듣기 어렵다.
그것도 이유 중의 하나이지만 마스크를 쓴 사람과는 길게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인간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했을까?
마스크 쓰고 말하지 말라고 했을까?
우체국에 사람들은 많아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조용하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체국에 온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다.
오래전에 통영에 갔을 때 시인 유치환이 들렸다는 우체국에 가 보았다.
그때는 그냥 평범한 우체국이었다.
엽서 한 장 사서 오산 친구에게 외우고 있던 시를 적어 보낸 일도 있었다.
하지만 노인이 된 오늘 나는 ‘행복’이란 시를 온전히 외우지도 못한다.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보이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책을 붙이고 돌아서는 발길이 한결 가볍다.
무엇인가 주었다는 이유 때문에 온종일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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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일 at 8: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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