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에서 맞는 아내의 생일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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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의 마지막 장이 벽에 남았다.

12월은 우리 가족에게 기쁜 날이 많은 달이다.

3일이 아내 생일이고, 10일이 결혼기념일이다. 12일이 큰손주 생일이고 같은 12일이

막내네 첫째 딸 생일이다.

손주와 외손녀의 생일이 같은 날이어서 늘 함께 치렀으나 이번 해에는 코비드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손자들은 다가오는 생일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속절없이 늙어가는 내게는 그리 반가운 게

못된다.

그 만큼 더 늙어간다는 것밖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12월은 한 해의 마지막이고 마지막이라는 것이 벼랑 끝에 선 듯한 느낌을 주면서

막막함이 엄습해 온다.

집집마가 크리스마스 붉을 밝히고 선물 나르는 택배 차량이 골목길을 누빈다.

엘리뇨인지 뭔지로 인하여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데, 코비드 때문에 아무도 오지 않는

빈 집에서 아내 생일이랍시고 덩그러니 두 늙은이가 마주보고 앉아있다.

그래도 축하는 해야지. 설혹 한 사람만 남았다 하더라도 생일은 축하할만한 가치가 있는

날이다.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면서 하루에 2,800명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를 주눅 들게 하고도 남는다.

실내에 모이는 행위를 다시 금지하면서 식당에도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내일이면 아내의 생일인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게 되었다.

뭐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하면 되지.

먼저 장미꽃을 사기로 했다. 한 다발에 24송이가 들어 있는 장미 다발을 주워들었다.

붉은 장미로만 들어 있는 꽃 패키지가 있는가 하면 붉은색, 노란색, 핑크색이 섞여 들어 있는

패키지도 있다. 노인들인데 정열적인 것보다는 고루고루 섞여 있는 장미가 좋아 보여서

한 다발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저녁을 식당에 나가 먹을 수 없으니 오더 해 다 먹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알라메다 스시 하우스를 열어놓고 저녁 메뉴를 골랐다.

아내는 벤또 박스 디너에서 셀몬 데리야키로 정하고, 나는 모둠 디너로 사시미와 스시로

정했다.

30분을 달려서 스시 하우스에 갔다.

샌프란시스코만 비치 길은 신혼 초, 우리가 아파트에 살 때 줄기 장창 달리던 길이다.

아내 운전 가르쳐 주느라고 매일 가고오던 길이어서 눈에 익은 장면이 반갑다.

하다못해 그때 풍겨오던 바닷가 냄새까지 정겨웁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한 건 없다.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이다.

오래간만에 지나는 길의 감회가 깊었다.

스시 하우스에 앉아 있는 손님은 없었고, 픽업해 가는 손님만 드문드문 드나든다.

전에는 주차장에 차 댈 틈이 없었는데 오늘은 한산해서 좋다.

초밥으로 생일 저녁을 잘 먹었다.

 

어떻게 된 게 지금은 생일 카드도 없이 동영상으로 대신한다.

막내딸네 손녀가 할머니 생일을 축하해요하면서 축하 동영상을 보내오더니 점심시간에는

큰 딸네 손주가 학교공부하다 말고 동영상을 찍어 보내왔다.

혼자 서서 중얼대듯 떠들기가 민망해서 그랬겠지만 몸을 비비 꼬고 틀면서 주절주절

할머니 사랑해요한다.

저녁에는 아들네 식구가 한 스크린에 모여 앉아 한동안 떠들다가 들어갔다.

며느리가 일본에서 돌아와 함께 있으니 보기에 좋았다.

세상이 뒤숭숭하니 새로운 세태가 다 벌어진다.

아무튼 아내의 생일을 잘 지냈다는 생각에 한결 마음이 홀가분하다.

내년에는 가족이 모두 모여 식당에서나마 같이 저녁을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지금 같아서는 그것도 그때 가 봐야 알 것 같은 데, 이게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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