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곷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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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를 한 아름 끌어안고 행복에 취해 노래 부르는 노란 민들레를 만났다.

담벼락 밑에 홀로 피었을망정 행복해서 죽겠다는 표정이다.

아침 운동길에 만난 민들레다.

나는 원래 게으르게 태어나서 예전에는 무척이나 걷기가 싫었다.

꼭 필요한 거리만 걸었지 운동으로 걷는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자극을 받고 습관을 바꾸게 되었다.

 

신발에 모래알이 하나 들어간 모양이다. 디딜 적마다 따끔거려서 걸을 수가 없다.

벤치에 앉아 신발을 벗었다. 쌀알만 한 모래알을 꺼냈다. 요 작은 모래알 하나가

나를 괴롭혀 꼼짝 못하게 만들다니, 결국 벤치에 주저앉아 신발을 벗었다.

지금은 사망한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 목에는 커다란 혹이 나 있었다.

혹이 너무 커서 아프거나 불편할 것 같아도 그는 끄떡없이 죽을 때까지 달고 살았다.

나는 쌀알만 한 작은 모래알 하나에 꼼작 못하고 항복하고 말다니.

크고 작음은 문제가 되지 않고 어느 곳에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것이다.

내가 앉아 있는 통나무 벤치에는 벤치 기증자 이름이 새겨진 작은 동판이 붙어 있다.

‘Helen Mayer 헤렌 메이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우리들의 작은 소녀라고 쓰여 있고,

1924년에 태어나서 1995년에 사망했다고 적혀있다.

계산해 보니 71세 할머니란 이야기가 된다. 할머니를 작은 소녀라고 부를 정도라면?

 

나는 이 벤치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하나 있다.

미국에서 차만 타고 다녔지 걷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때였다.

하루에 겨우 서너 발자국 걷는 게 고작이었다.

한번은 수원 친구네 집을 방문했다.

새벽에 친구가 운동을 나간다기에 멋도 모르고 따라 나섰다.

친구는 광교저수지를 지나 백운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생판 운동이라고는 해 보지도 않다가 친구 따라 산에 오르려니 숨이 목까지 차서 도저히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었다.

열 발짝 가다가 쉬고, 다섯 발짝 가다가 쉬기를 반복했다.

얼굴색이 하얘지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친구보기에 미망한 것은 물론이려니와 스쳐 자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는 게 창피했다.

하도 힘들어 하니까 지나가던 아주머니들이 보고 낄낄 웃는다.

중도에 포기하고 내려오고 말았다.

 

미국 집으로 돌아와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걷기 시작했다.

첫날, 오늘 내가 앉아 있는 이 벤치까지 억지로 기다시피 하면서 걸어왔다.

벤치가 눈에 띄는 게 어찌나 반가운지 덥석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나를 편안히 쉬게 하던 이 벤치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6개월 정도 꾸준히 걸었더니 폐활량도 늘어나고 다리에 근육도 생기면서

친구 따라 등산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지나가다가 미국인들이 걸을 때 뒤뚱거리면서 겨우 걸어가는 것을 보면

옛날 내 자신이 생각나곤 한다.

습관은 중독성이 있어서 어떤 자극이나 계기가 있기 전에는 고치기도 어렵다.

자신이 습관에 빠져 있는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내 자신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 눈에는 잔디밭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민들레꽃도 아름답게 보이는데,

예뻐서 무릎 꿇고 사진도 찍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보나마나한 잡풀로 보일 뿐이다. 그냥 보지도 않고 지나친다.

 

아침 해를 듬뿍 끌어안고 행복에 취해 노래 부르는 노란 민들레꽃을 보면서

오늘 하루 행복하기 위하여 모질고 긴 여름과 추운 겨울을 견뎌냈나 보다.

견뎌내는 훈련을 끝없이 해 내고 얻은 결과물이 단 하루 만발한 민들레꽃이라는

생각이 든다.

꽃이 화려하고 예뻐 보이는 이면에는 364배 어려운 고난이 따랐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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