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과 조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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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이 오스카 조연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조영남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전 남편 조영남에 대한 복수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세기의 복수극을 글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 복수극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신문에 윤여정 축하, 바람피운 남자에 최고의 복수이런 기사가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김 샌 이야기는 쓰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에 접어두었다.

 

며칠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블로그를 쓰는 것 아니냐. 블로그는 뒷이야기를 쓰는 거지.

사실 나는 윤여정이 나오는 영화를 본 적도 없고 연속극도 보지 않았다.

심지어 미나리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윤여정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윤여정보다는 조영남의 노래를 좋아했고 조영남에게 관심을 두다 보니 윤여정이라는 사람도

알게 된 것이다.

1970년대 조영남이 미국 플로리다에서 신학 공부할 때 샌프란시스코 감리교회 예배 시간에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다.

내 눈에는 그때 겸손치 못한 태도가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조영남이라는 사람은 원래 개방적으로 태어난 인물이어서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었다.

조영남이란 인물을 이해하건 말건 나는 조영남의 노래는 좋아도 사람은 싫다.

천방지축 떠드는 것도 싫고, 화토를 그림이라고 우기는 것도 싫고, 무대에서 난척 하는 것도 싫다.

거기에다가 아들 둘 낳아놓고 나 몰라라 하고 저 좋은 짓만 하고 다닌다는 건

정말 보기 싫은 인간의 상징처럼 되었다.

어느 남자가 젊고 예쁜 여자 싫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사회적 약속이라는 게 있는 거고 약속을 지키면서 질서가 유지되고 삶이 아름다워지는 것

아니겠는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그렇고, 미담은 다 그런 데서 나온다.

근래에 조영남이 아침마당에 나와서 한다는 소리가 가관이었다.

오래전에 윤여정에게 꽃을 보냈다는 것이다. 세 번째 보냈더니 한 번만 더 보내오면 경찰에

신고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조영남다운 발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간단하게 꽃으로 해결해 보겠다는 것 아닌가?

아니면 꽃으로 찔러서 윤여정의 반응을 떠보겠다는 것 아니었나?

엎드려 빌면서 사정을 들어봐 달라고 호소해도 들어줄까 말까 한 처지인데

애들 장난하듯 쿡쿡 찔러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덜떨어진 사고에서 벌어진 일이다.

 

윤여정이 오스카상을 받았다고 여러 신문에서 윤여정의 통쾌한 복수라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복수극은 오스카상 받기 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온 국민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다 알고 있었다.

다만 오스카상이 복수극을 밖으로 들어냈다는 것뿐이다.

윤여정이 말하지 않았는가?

두 아들 키우느라고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출연했다고 하지 않더냐.

여자 혼자서 두 아들 공부시킨다는 게, 그것도 경쟁이 심한 한국에서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는가? 더군다나 전 남편에게 손 내밀지 않고…….

 

나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지만 복수극치고는 너무나 통쾌한 복수여서

10년 묵은 체증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윤여정이 출연한 작품은 본 일이 없지만, 심지어 미나리도 보지 않았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인생의 역전 드라마를 보면서 명작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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