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 년은 집에서 꼼짝 못 하고 갇혀 지내는 감옥 생활 같은 나날이었다.
집에 갇혀 사는 까닭은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처음 코로나 유행병이 미국에 상륙했을 때 뉴욕에서는 하루에 수천 명씩 죽었다.
시신을 처리하지 못해서 냉동 컨테이너에 보관해 둘 정도로 많이 쌓여갔다.
코로나에 걸리면 곧 죽는다는 위협 속에서 살았다.
꼼짝없이 집에 머물렀고 개인 시간이 많아지면서 책도 읽고 밀렸던 글도 쓰면서 한동안은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그 바람에 책도 두 권 출판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다음으로 즐겼던 것은 동네 한 바퀴 돌아오는 운동길이었다.
하루도 빼지 않고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운동도 되고 새로운 것도 알게 된다.
새로운 것을 터득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대할 때에 발생할 수도 있지만
똑같은 일을 반복할 때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매일 같은 길을 걷다 보면 그게 그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삼라만상이 하루도 같은 날이 없는 것과 같다.
하늘이 푸르고, 기온도 바람도 날씨도 다 다르다. 나무도 그날그날 변해간다.
늘 반복되는 동네 한 바퀴를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일상을 사랑하게 된다.
그날의 기온을, 날씨를, 바람을, 스쳐 가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걷다 보면 동네 사람들이 여럿 걷는데 그게 그 사람이다. 그들도 나와 유사한 사정으로
걷는 것이리라. 스쳐지나 다니면서 어제 본 그 사람 오늘 또 만나고 어제 밀고 간
베이비 스트롤러 오늘도 밀고 간다.
한번은 운동길에 아내가 집 열쇠를 잃어버렸다.
그날따라 날이 더워서 재킷을 벗어 두 소매로 허리를 둘러 동여매고 걸었다.
그 통에 열쇠가 주머니에서 빠져나갔으리라. 어디에다 떨렸는지 알 수 없었다.
아내는 열쇠를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살필 곳은 다 살펴보았다.
나 역시 뒤따라가면서 혹시나 하고 땅만 보고 걸었다.
그렇다고 한번 잃어버린 열쇠를 찾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찾기를 포기하기까지 아내는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집에 돌아 왔는 데 문을 열 수가 없었다.
궁리 끝에 현관문 옆에 난 작은 창문은 늘 잠겨 있지 않다는 것을 떠올렸다.
밖에서 창문을 열기는 했으나 나는 덩치가 커서 들어갈 수 없었다.
체격이 작은 아내가 창문을 빠져들어 가기로 했는데
내가 밑에서 밭쳐주고 아내는 기어들어 가는 모습이 꼭 도둑이 빈집에 들어갈 때처럼 보였다.
한길에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보는 사람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누가 보았다면
경찰에 신고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한국인들은 고층 건물에서 살기 때문에 열쇠 대신 디지털 번호를 외우고 다닌다.
집 드나드는 문에만 디지털 번호가 필요한 게 아니라 게이트 들어오는 문도 번호를 외우고
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일산 오피스텔에 가지 못하는 바람에 게이트 여는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았다.
나보다 기억력이 좋은 아내더러 물어 챙겨놓았다.
막상 게이트 앞에 와 보았더니 외울 필요 없이 비밀번호 표시가 나타나 있다.
언젠가 몹쓸 녀석이 비밀번호 4자리에 슈퍼 굴류를 발라놓아 숫자 번호를 눌러도 작동하지
않게 해 놓았었다. 비밀번호 숫자 네 개만 들러붙어서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관리사무소에서 수리하는 사람을 불러 슈퍼 굴류를 녹여 내서 다시 작동은 하지만
비밀번호 4자리에는 선명하게 자국이 남아 있다.
나처럼 기억력이 온전치 못한 사람은 구태여 비밀번호를 외울 필요가 없어서 몹쓸 녀석이
고맙기도 하다.
이것은 드러난 예에 불과할 뿐, 실제로는 비밀번호라는 건 비밀번호가 아니다.
일반인들에게만 비밀번호일 뿐 범죄자들에게는 비밀번호는 안내 번호나 마찬가지이다.
범인들은 비밀번호를 좋아한다. 쉽게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카드키도 매한가지로 복제가 쉽다.
그런가 하면 도어락의 보안 장치는 무한대로 발달해 가고 있다.
지문 인식, 얼굴 인식, 휴대폰에 직결되는 장치도 있다.
미국에서는 열쇠 꾸러미가 필수품인 데 비해서 한국에서는 열쇠 없이 살아서 좋다.
열쇠 없는 주머니가 가벼워서 좋기는 한데 지금쯤 천국의 열쇠는 어떻게 변했을까?
천국의 문도 열쇠 대신 디지털로 바뀌었을까?
아닐 거야.
천국의 문은 내가 여는 게 아니라 문 앞에 서서 내가 왔다고 노크하면 알아서 열리든지
안 열리든지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