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살인 이종사촌 누님은 늘 웃는 얼굴이다.
친척 중에서 가장 부자로 산다.
한번은 누님이 하도 잘 사니까 아내는 누님 어디에 그리 복이 많으냐고 물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더니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늘 웃어서 복이 떠나지 못 하나보다라고 말해 준 적도 있다.
나이가 많을 뿐 건강해서 안 돌아다니는 데가 없다.
집에 붙어있는 시간보다 나다니는 시간이 더 많다.
카톡도 잘해서 나보다 더 긴 글을 보내오곤 한다.
엊그제가 어버이날이어서 떠다니는 글 한 편을 누님에게 보냈다.
가장 받고 싶은 상
부안 우덕 초등학교 6학년 1반 이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짜증 섞인 투정에도
어김없이 차려지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그런 상
하루에 세 번이나 받을 수 있는 상
아침상, 점심상, 저녁상
받아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안 해도 되는 그런 상
그때는 왜 몰랐을까?
그때는 왜 못 보았을까?
그 상을 내시던 주름진 엄마의 손
그때는 왜 잡아주지 못했을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했을까?
그동안 숨겨뒀던 말
이제는 받지 못할 상
앞에 앉아 홀로 되내어 봅니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 고마워요. 엄마, 편히 쉬세요.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 엄마상.
이제 받을 수 없어요.
이제 제가 엄마에게 상을 차려 드릴게요.
엄마가 좋아했던 반찬들로만 한가득 담을게요.
하지만 아직도 그리운 엄마의 밥상
이제 다시 못 받을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 울 엄마 얼굴 상
원래 어머니에 관한 글이라는 게 슬프기 짝이 없는 글이다.
누님한테서 답글이 왔다.
“어머니!! 그 정다운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마음이 항상 아프다. 너로 인해 카톡 보고
울었다.”
아니! 구십이 넘은 할머니가 엄마 생각으로 눈물을 흘리다니?
야릇하고 미묘한 감정이 몰려왔다.
내가 20대 때의 일이다.
흑백 TV 시절이었는데 아이젠하워 대통령 부인 에마가 90세 생일을 맞아 인터뷰했다.
그때는 90이면 아주 오래 산 거로 치던 때다.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19이다“라는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웃었다. 믿지 않았다.
반세기가 흘러, 91살인 누님이 엄마 생각이 나서 울었다는 말을 듣고 공감했다.
이종사촌 누님의 어머니, 그러니까 내게는 이모이다.
이모는 딸 쌍둥이에 딸 하나를 더 낳고 출산이 멎었다.
그리고 이종사촌 누님이 고등학교 때 뜻밖에도 임신했다.
애 낳고 16년을 쉬었다가 다시 임신한 것이다. 그 아이를 낳다가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이종사촌 누님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를 잃은 것이다.
당시에 누님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이모부는 삼척에서 병원을 개업한 의사였다.
의사가 자기 부인의 출산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자살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갑자기 부모를 잃은 누님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카톡에서나마 어머니에 관한 글을 읽고 울었다는 이야기에 공감이 가는 것이다.
나야 어렸으니까 가정 사정을 세세히 알지 못했다.
누님이 우리 집에 자주 들르고, 하다못해 부부 싸움을 하고도 우리 집으로 달려왔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이모를 엄마 대신으로 여기고 드나들었던 거다.
91살의 나이에 아직은 팔팔하다만 목숨이라는 게 어디 그러냐.
건강하다가도 갑자기 갈 수도 있는 거여서 백신 맞았느냐고 문자나 보내 본다.
아흔 살이 되면 인제 그만 엄마는 없을 것 같아도 서른다섯 나이 어린 엄마가 어른거린다.
백발의 노인이 새파란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러니가 어디 누님뿐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