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고약한 사람이다.
얼마 전에 TV에서 정직한 식당이라고 보여줬다.
사실 똑 불어지게 언제라고 말하지 못하는 까닭은 너무 오래돼서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날짜를 가늠해 보기 위해 주인에게 이 식당 언제 열었느냐고 물어보았다.
8년 됐단다. 그러니까 내가 TV에서 맛자랑을 본 게 8년 전이라는 말이다.
엊그제 같은데 8년이 지났다는 것은 나의 과거 기억은 믿을 게 못 된다는 이야기다.
TV 맛자랑에서 전국에 도가니탕 집이 그렇게도 많은데 그중에서 정직하게 도가니탕을
끊이는 집은 몇 집 안 된다고 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도가니탕을 찾아다니면서 먹었는데 그렇다면 가짜 도가니탕을
먹었단 말인가?
도가니탕은 씹히는 맛이 쫄깃쫄깃하고 오독오독한 게 내 입맛에 딱 맞다.
일전에는 일부러 영천까지 나가서 사 먹었던 일도 있다.
그러나 TV에서 맛집을 소개하는데 도가니탕이 모두 가짜라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가니라는 게 소의 무릎부위인데 소의 무릎은 네 개뿐이어서 소 한 마리 잡아 봐야
도가니는 4개밖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전국에 도가니탕 집이 얼마나 많은가? 그 많은 도가니탕 집들은 어디서 도가니를
구해 온단 말인가? 결국은 도가니와 비슷한 힘줄이나 근육 응어리 즉 ‘스지’로 끓인 탕을
도가니탕이라고 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국에 진짜 도가니탕을 파는 집은 몇 집 안 되는데 그중의 한 곳이 일산 백석동에
있다고 소개해 주었다.
백석역에 있는 미스터 곰탕집에서 진짜 도가니탕을 끓인다고 했다.
정말 정직하게 끓이는 것도 다 보여주었다.
내가 같은 동네인 백석동에 사는 관계로 가끔씩 그 식당 앞을 지나다닌다.
나는 그 식당 앞을 지나갈 때마다 들여다본다.
손님이 얼마나 있나? 진짜 도가니탕이 맞을까?
어제 아침에도 지나가면서 들여다보았다. 두 테이블에 손님이 앉아 있다.
그래도 나는 의심이 든다. 혹시 PD와 짜고치는 고스톱은 아닐까.
그러면서도 한번 먹어봐야 할텐데 하는 마음만 있었지 실제로 먹어보지는 못했다.
한번은 진짜 먹어보려고 안을 들여다보고 가격표를 보았다. 도가니탕이 12000원이다.
그때만 해도 설렁탕 한 그릇에 6000원하던 때이다.
가격이 너무 비싸서 돌아서고 말았다.
들여다보면서 지나다닌지도 어느덧 8년이 흘렀다.
나는 참 못돼먹게 야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까짓거 눈 딱 감고 사 먹어도 될 것을 왜 그리 궁상을 떨었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모처럼 동생이 점심때 들르겠다고 했다. 같이 점심이나 먹자는 거다.
무엇으로 점심을 먹을까 생각하다가 도가니탕이 생각났다.
동생과 함께 미스터 곰탕집으로 향했다.
그사이 음식값이 올라서 도가니탕이 16000원이다.
16000원이 내게는 비싼 음식이었지만 먹기로 했다.
밥상은 깔끔하게 차려낸다.
음식을 들고온 주인이 탕 그릇에서 커다란 소의 무릎뼈 도가니를 꺼내 옆 접시에 담아놓는다.
확실한 도가니탕이라는 걸 확신시켜주는 것 같았다.
나처럼 고약한 사람들을 위하여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한점 담아 씹어보았다. 찰진 쫄깃한 맛이 담백하다. 여느 집처럼 느끼하지 않았다.
별 다섯짜리 정직하고 착한 식당 ‘미스터 곰탕집’다웠다.
도가니탕도 좋았고, 맛도 좋았고, 분위기도 괜찮았지만, 가격은 맘에 안 들었다.
멋진 뷰가 있는 자리에서 풍광을 즐기면서 먹었더니 그 가격이 나왔다고 한다면 모를까,
백석동 대로변에서 그 가격으로 점심 한 끼를 때우기에는 너무 버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