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과 종이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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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차 시간이 다가왔다.

주전자에 물을 담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았다.

물이 끓기 전에 종이컵을 꺼내 놓고 블루베리가 섞인 다크 초콜릿(Dark Chocolate with Blueberries)

두 조각을 컵에 담았다.

종이컵을 쓰려고 한 까닭은 마신 다음 컵을 씻기가 귀찮아서 종이컵으로 마시고 버리겠다는 심산이었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창가로 다가와 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차를 마신다는 게 그냥 차 물을 마시겠다는 게 아니지 않은가?

차를 마신다는 것은 첫째 시간의 여유를 느끼겠다는 것이고.

둘째 차를 마시는 분위기에 젖어 들겠다는 것이며,

셋째 차의 향을 먼저 음미하고 마음을 가라 안인 다음 차 한 모금으로 입안에서 향을

맛보겠다는 것이다.

차를 마시는 절차에서 분위기는 매우 중요해서 같은 차를 어디서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서

맛이 천차만별일 것이다.

차를 마시는 동안 찻잔이 입술에 닿을 때 느끼는 감촉 역시 무시 못 할 접촉의 감미로움을

맛보는 것이리라.

 

오래전에 읽었으면서 지금껏 잊히지 않는 글 중에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어느 학자가

독일 유학 중에 구해온 사람 해골로 만든 맥주 머그잔이 떠올랐다.

인골로 맥주 머그잔을 절묘하게 만들어 잡아 들면 가볍고 입술에 닿으면 부드러워 촉감이

사람의 마음을 묘하게 흔드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그분은 비 오는 날 해골 머그잔에 맥주를 담아 들고 창가에 서서 마신다고 했다.

인골이 주는 감촉이 부드러워서 맥주잔이 입에 닿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니 그냥 허공에

떠 있는 맥주를 마시는 것처럼 기분을 들뜨게 한다는 글이었다.

 

차를 마실 때 찻잔은 매우 중요하다.

아들의 대학 로고가 그려진 커피 머그잔을 꺼냈다.

다크 초콜릿 투 피스를 옮겨 담고 창가로 걸어와 물이 끓을 때 지르는 휘파람 소리를

기다렸다.

휘파람 소리는 가늘게 시작해서 점점 소리를 높여갔다.

젖 달라는 아기의 울음소리처럼 젖꼭지가 입에 물릴 때까지 강도를 빠르게 높이며 아우성쳐

댔다.

뜨거운 물을 붓고 찻숟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려가며 저었다.

캘리포니아 곰이 그려진 커피 머그잔을 들고 창가로 다가갔다.

밖에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오는 날 따끈한 차를 들고 서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미 마음은 가라앉아 차분하다.

머그잔이 입술에 닿는 감촉이 부드럽고 따스하다.

머그 찻잔은 재촉하지 않고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 있게 마시라고 천천히 식어갔다.

종이컵으로 마실 때의 독촉이나 초조함과는 격이 달랐다.

조그마한 차이로 차 한 잔이 주는 오후의 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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