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꺾어온 들장미
시든 배춧잎처럼 축 늘어졌네
물컵에 꽂아놓고 잠시 잊고 있다가
생각나서 가 보았네
영양제 한 대 맞았나?
활기 넘쳐 보이네
내가 소중하다고 해서 남들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젊은 조카사위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동생과 나는 성묘하러 갔다.
공원묘지 동산을 거닐다가 들장미를 만났다.
기후변화가 여기까지 밀려와 동산을 정글로 만들더니 어디서 가져왔는지 들장미도 피웠다.
들장미 넝쿨이 꽤 넓게 번져 있었다.
빨간색 장미가 대부분이고 드문드문 핑크색도 보인다.
들장미는 꽃송이가 집 장미보다 작다.
집 장미는 남자 어른 주먹만 하지면 들장미는 아기 주먹보다도 작다.
작지만 빨간색이 정열적이며 꽃잎이 빈틈없이 차곡차곡 채워있다.
들장미가 하도 예뻐서 꽃 한 송이와 몽우리가 여러 개 달린 줄기를 한 뼘 길이로
꺾어 들었다. 집에 가져다가 책상 위에 꽂아놓을 심산이었다.
나만 혼자 갖기에 미안한 것 같아서 네 줄기 더 꺾었다.
내가 꽃을 꺾느라고 꾸물대는 바람에 동생과 조카사위가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들장미 가지 하나만 갖기로 하고 네 줄기는 동생에게 주면서
제수씨 갖다주고 병에 꽂아 싱크대에 놓아두라고 일러주었다.
차를 타고 동생네 아파트까지 오는 동안 들장미는 시들어갔다.
시든 배춧잎처럼 축 늘어졌다.
동생은 가방에 담아온 들장미를 어디다 꺼내 버렸는지 눈에 띄지 않는다.
들고 갔던 가방을 다 비웠는데도 들장미는 보이지 않았다.
들장미에는 관심도 없어 보이는 동생에게 뭐 대단한 선물이라고 물어볼 수도 없고.
그냥 놀다가 돌아왔다.
한 손에는 시든 들장미를 쥐고 다른 손에는 배낭을 들고 신이 나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컵에 물을 붓고 가위로 들장미 밑동을 1cm 정도 자른 다음 꽂아
모셔놓았다.
한 시간쯤 지난 다음 싱크대에 가 보았다.
꽃은 언제 시들어본 적 있었느냐는 듯 고개를 바짝 쳐들고 붉은빛을 뽐내고 있었다.
내 눈에는 크고 화려한 꽃다발보다 한 송이 들장미가 더 아름답다.
동생이 버린 들장미가 아깝다는 생각에 속이 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