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탑골공원

 

탑골공원 뒷골목에 가면 ‘유진식당’이라는 작은 냉면집이 있다.

예전에 아내와 함께 갔을 때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었다.

줄을 서는 이유는 식당 안이 좁아서 몇 사람 앉지 못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주인아주머니가 앉으라는 자리에 앉자니 벽을 보고 앉았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 기내식 먹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모여드는 까닭은 냉면 맛이 특별나기 때문이다.

면발이 굵고 맥이 없이 툭툭 끊어지는 게 춘천 막국수 비스름하다.

그러면서도 구수한 맛이 나고 메밀 향이 배어있다.

육수 역시 구수해서 면과 육수가 어우러져 맛을 살려낸다.

고급 냉면집 냉면과 맛이 다르다.

맛이 괜찮다고 해도 손님을 모시고 갈만한 곳은 못 된다.

친히 아는 사람끼리라면 몰라도…….

 

내가 이 집의 냉면 맛이 마음에 드는 까닭은 아주 오래전에 젊었을 때의 기억 때문이다.

차를 몰고 홍천 어느 시골길을 달리다가 길옆에 ‘냉면’이라는 임시 간판을 세워놓은

집을 발견하고 차를 멈췄다.

그냥 보통 시골집에서 냉면을 먹었는데 부엌에서 직접 냉면 발을 뽑아내면서 익혀서

말아주는데 막국수도 아니면서 냉면은 냉면인데 그 맛이 구수한 게 인상에 남았다.

평양 옥류관 냉면도 먹어보았지만, 홍천 시골집 냉면 맛만 못했다.

지금은 시골길이 대로로 변하면서 사라지고 없어졌지만, 그 맛은 내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쉰다.

탑골공원 뒤편 유진 식당 냉면 맛이 홍천 시골집 냉면 맛이라는 게 아니라

잊고 지내던 맛을 떠올리게 하므로 들르곤 한다.

오늘도 대한민국에서 이발료가 가장 싸다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나오다가

유진 냉면집에 들렀다.

처음에는 이 집 영업 안 하나 하고 착각했다. 기대했던 만큼 손님이 없었기 때문이다.

좁아터진 구석에 앉아 냉면을 시켰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종이에 코로나 방역 연락처를

적어달라고 해서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었다.

냉면을 즉석에서 뽑아 끓이는 동안 밖을 내다보았다.

밖에는 노인들이 탑골공원 담벼락을 따라 길게 줄이 늘어져 있다.

아주머니더러 저게 뭐 하는 사람들이냐고 물어보았다.

무료급식 기다리는 사람들이란다.

냉면을 다 먹고 나오면서 보았더니 줄을 길게 섰던 그 많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노인들은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느라고 연상 돈을 넣고 있었다.

 

몇 발짝 걸어가면서 상황을 판단했다.

원각사 무료 급식소라는 간판이 보인다.

나이깨나 들어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이 막 점심 배급을 끝내고 들어가려는 참이었다.

주변 땅바닥에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는 노인들을 보았더니 지름 10.3cm 높이 7cm쯤 되는

종이 그릇에 밥이 담겨 있었고 같은 사이즈의 종이 그릇에 국이 담겨 있었다.

밥과 국을 포개놓고 비닐봉지에 넣어 배급 했다.

노인들은 각자 받아들고 흩어져서 아무 데나 앉아 먹는 것이다.

일하는 아주머니더러 물어보았다.

하루에 350명분을 나눠준단다.

 

과연 이것이 무엇이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노숙자 급식도 아니고 저소득층 급식도 아니고 무작정 노인들에게 점심을 주겠다는

게 아니냐.

한국은 노인들에게 거저 밥을 주면 그것이 봉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전에 금촌 장날 전철역에서 내렸더니 역 앞에 텐트를 쳐놓고 노인들 점심을 주고 있었다.

나도 한 그릇 얻어먹었다만, 이것이 왜 주는 것인지, 무슨 봉사인지 모르고 먹었다.

내용을 물어보았더니 어느 독지가가 자금을 내놔서 올해 일 년 동안 노인들에게 점심을

대접하는 것이란다.

고맙다는 생각은 안 들고, 엉뚱하게 먹기는 먹는다만 이렇게 공짜로 나눠줘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탑골공원 뒷길에서 노인들에게 무료 점심을 나눠주는 것이 올바른 행사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원각사에서는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무료급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봉사는 아니다.

무엇인가 노동 후에 먹을 수 있게 하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해 보는 소리이다.